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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의술]5년간 7번 유산의 아픔 겪은 40대 여성에게 쌍둥이 ‘선물’

입력 | 2015-11-23 03:00:00

양광문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




양광문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는 “습관성 유산 환자는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임신 초기부터 적절한 치료를 하면 충분히 임신을 유지할 수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그야말로 ‘종합병원’에 해당되는 환자였죠.”

매해 1만5000명 이상의 난임 환자를 진료하며 난임 치료의 대가로 불리는 양광문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50)는 2013년 7번의 유산 끝에 찾아온 김모 씨(43)를 잊지 못한다. 김 씨가 습관성 유산 및 난임 환자에게서 보일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 습관성 유산은 임신 20주 전 자연유산이 연속 2회 이상 반복되는 것을, 난임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는데 1년 이상 임신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김 씨는 2006년 결혼 6개월 만에 임신했지만 9주 만에 태아의 심장 박동이 들리지 않으며 유산됐다. 1년 후 다시 임신했지만 8주 만에, 이후 세 번째 임신도 비슷한 시기에 유산됐다. 그렇게 5년 동안 7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2010년 이후로는 임신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3년 뒤 양 교수를 찾은 것.

양 교수는 “잦은 유산으로 김 씨의 자궁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출산 뒤 태반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 자궁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유산은 자궁 내에 파고 들어가 있던 태반이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억지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궁을 크게 손상시킨다. 김 씨의 경우 이런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자궁 내막의 유착(癒着·조직이 들러붙는 것)이 심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정이 돼도 제대로 착상될 수 없었다. 김 씨가 3년간 임신이 되지 않았던 이유다.

양 교수는 자궁 내시경 수술을 통해 자궁 내막 유착부터 제거했다. 동시에 여러 검사를 통해 습관성 유산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봤다. 그 결과 면역세포의 일종인 자연살해세포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있음을 밝혀냈다.

“김 씨의 습관성 유산 원인은 면역학적 이상입니다. 임신 후 형성된 태반은 내 몸이 아니기 때문에 면역세포가 거부해야 하지만, 보통 임신하면 해당 면역 체계가 약해져 거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면역관용’이라고 하는데, 김 씨는 이것이 제대로 생기지 않은 거죠. 쉽게 말해 몸 안의 면역세포가 태반을 이물질로 간주해 공격했고, 그래서 유산을 거듭하게 된 것입니다.”

양 교수를 찾았을 때 이미 40대에 접어든 김 씨는 양쪽 난관이 막혀 있고 난소 기능 또한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양 교수는 자연임신보다는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을 택했고, 시술 후 3개월 만에 쌍둥이 임신에 성공했다. 기쁨도 잠시,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임신을 잘 유지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약물 치료를 통해 면역체계가 과하게 발동하지 않도록 조절했다. 김 씨는 임신 10주 후에도 배 속 두 아이의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보통 임신 10주가 넘어가면 유산 확률이 뚝 떨어진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고령에 쌍둥이 임신인 데다가, 심하진 않지만 임신성 고혈압과 당뇨병도 나타났기 때문. 김 씨는 거의 매주 병원을 찾으면서 관리했고, 그 결과 임신 37주인 올 초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들 딸 쌍둥이를 건강하게 낳았다.

양광문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가 시술실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난임 환자의 난자를 채취하고 있다. 제일병원 제공

양 교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습관성 유산과 난임도 존재하지만 상당수 원인을 알고 치료하면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다”며 “보통 체외수정을 4회 정도 시도하면 70%가량은 임신했고, 대부분 의료진 관리 하에 잘 유지해 출산까지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습관성 유산 및 난임 환자 대부분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여깁니다. 그렇다 보니 임신에만 더 몰두하고 실패하면 매우 괴로워하죠. 저는 환자들이 아기를 가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면 절대 못 하게 해요. 정확한 원인을 찾아 치료하되,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의 정서적 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  역학적 요인 습관성 유산, 약물치료로 90% 막을 수 있어 ▼


습관성 유산은 임신 20주 전 자연유산이 연속 2회 이상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임신을 원하는 부부의 5∼10%에서 나타난다.

원인은 심각한 기형을 가진 태아가 임신됐을 경우와 태아는 정상이지만 모체(母體)에 문제가 있을 경우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보통 첫 유산은 태아의 기형으로 인한 가능성이 60∼70%에 이르지만, 유산이 거듭될수록 모체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통 두 번의 유산 후 다음 임신 시 유산 가능성은 24%, 세 번 유산 후 30%, 네 번 이상 유산 후 40∼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체에 원인이 있는 경우는 보통 면역학적 요인, 자궁 기형, 호르몬 불균형, 자궁 내 감염 등으로 나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면역학적 요인. 쉽게 말해 모체에 있는 면역세포가 태반을 이물질로 간주해 공격하는 것이다. 면역 조절 및 억제, 자궁 내 혈액 순환 증가 등을 위한 약물 치료를 받는다면 90%가량 유산을 방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자궁 기형인 중격 자궁(자궁 내에 막이 있는 것)은 내시경을 통한 간단한 수술로 유산발생을 80% 이상 막을 수 있다. 호르몬 불균형이나 자궁 내 감염도 진단 후 호르몬 대체 요법이나 항생제 등을 통해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한편 유전적 원인으로 태아에 문제가 있어 유산되는 경우도 착상 전 유전 진단 및 건강한 배아 이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