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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삶의 흔적이 던지는 불편한 이물감

입력 | 2015-11-18 03:00:00

설치미술가 연기백 ‘곁집’전




연기백의 ‘교남 55+가리봉 137’(2015년).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히 소멸하는 대상의 흔적을 뜯어낸 벽지 위에 되살렸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재개발로 철거되기 직전의 아파트 방에서 뜯어내 말린 벽지를 작품의 주재료로 삼았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연기백: 곁집’전.

서울대 조소과 출신의 연기백 작가(41)는 버려진 집에서 수집한 물품과 낙서를 매개로 물질에 대한 고정관념을 되짚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헌 저고리 직물을 한 올 한 올 풀어헤쳐 재구성하거나, 버려진 물건을 수거해 필요한 이들에게 빌려주는 방식을 고안하고, 이사 온 방의 벽지를 뜯어내 매달아 전 주인이 남긴 흔적을 재생했다.

‘곁집’은 가옥 옆에 창고 등의 용도로 얼기설기 지어 얽은 공간이다. 청담동 명품거리 안쪽 길목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 입구에 폐기된 널판으로 엮어 세운 곁집은 의심스러운 이물감을 안긴다. 이 동네에 앉아 뉴타운 재개발 지역에서 소멸한 삶의 파편을 돌아보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쨌거나 작가는 3년째 진행하고 있는 도배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이곳에서 얻었다.

작품 ‘교남 55+가리봉 137’은 서울 돈의문 뉴타운 재개발 구역의 교남동에서 여러 겹의 벽지를 뜯어내 수조에 담가 1, 2주 동안 불려 한 층 한 층 분리한 뒤 다시 건조해 낚싯줄로 천장에 매단 설치물이다. 작가는 벽지를 거주하는 인물과 가장 가까이 맞닿았던 공간의 내피로 보고 관찰했다. 색 바랜 꽃무늬 벽지에 핀 곰팡이, 공간에 머물다 간 여러 주인이 화석처럼 남긴 낙서와 스티커, 50년 가까이 안쪽에 붙어 있던 1966년 어느 날의 신문지가 되살아나 걸렸다.

‘물 이용 방식 세 번째’는 교남동에서 가져온 20여 개의 빗물받이를 엮어 만들었다. 바닥에 깔린 함석지붕 잔해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이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된 근대식 가옥의 디테일을 덤덤히 재생시킨다. 두 개 전시실에 나눠 엮은 ‘낙엽이 달을 부수다’의 재료는 벽지에서 수집한 낙서들이다. “홀로 춤추는 사람을 홀로 춤추게 두지 말라.”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흙으로 만든 댐.” 누군가 주저앉아 토해내듯 끼적였던 문장들이 벽지와 장판 조각으로 재구성돼 모였다. 작가의 가치 판단이나 감상은 배제됐다. 편안하지 않지만 그래서 풍성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