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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음악을 사랑하는 이여, 그대 이름은 人間

입력 | 2015-10-31 03:00:00

◇음악 본능/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전대호 옮김/488쪽·1만8000원·해나무




노래하는 새와 네안데르탈인은 절대음감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 인류는 언어 습득을 위해 절대 음감 대신 상대음감을 택했다. 음악은 언어에서 분리돼 수많은 감성적 뉘앙스를 갖게 됐다. 해나무 제공

음악본능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전대호 옮김488쪽·1만8000원·해나무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멜로디 하나를 부르기 시작하자 수백 명의 참석자들이 이를 곧 알아듣고 마치 하나의 성대로 연결된 듯 동시에 같은 박자, 같은 멜로디로 따라 불렀다. 물리적으로 보면 음의 파동에 불과한 사건인데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눈물까지 흘렸다. 그들 중 다수는 노래를 만든 고인을 천재라 불렀고, ‘나 같은 범인은 결코 이룰 수 없다’며 음악가의 업적을 기렸다. 26일 오후 경기 안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인은 신해철, 그 노래는 ‘민물장어의 꿈’.

이 장면은 인간 뇌의 음악 인지 능력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보여주는 성화(聖畵) 같다.

인간은 누구나 위대하고 천재적인 음악 본능을 지녔다는 주장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요즘 같은 드론의 시대에도, 멜로디를 허밍하면 원곡을 찾아주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의 정답률이 낮다는 것은 인간의 청각이 얼마나 정교한가에 대한 방증이다.

책은 음악 본능의 신비를 파헤치며 ‘평범해 보이는 당신도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민물장어의 꿈’을 시작하는 ‘좁고 좁은 저 문으로’ 안에는 네 개의 계명(솔-레-미-파#) 외에 수많은 음이 더 숨어 있다. ‘솔’을 부른다고 정확히 솔만 내는 사람이나 악기는 없다. 음파의 특성상 기본음 외에 그 진동수의 2배, 3배, 4배, 5배에 달하는 배음(倍音·이 경우 시, 레, 파♭ 등)이 자연스레 같이 울리기 때문이다. 우리 귀와 뇌는 혼돈스러운 정보 속에서 알맹이를 유추해 기본음만을 명확하게 분류한다.

인간이 지각하는 소리의 범위는 10옥타브에 달하지만 시각 스펙트럼의 넓이를 건반으로 표현하면 한 옥타브에 불과하다. 눈의 망막에는 서로 다른 자극을 상대하는 세포가 2억 개쯤이나 있지만 귀는 수백 개의 악기가 동시에 내는 소리도 단 한 가지 파동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뇌가 한 줄의 파동을 분석해 선율, 박자, 화성, 리듬을 인지해 내는 과정에는 슈퍼컴퓨터 수만 대도 흉내 낼 수 없는 복잡한 수학이 작용한다.

책은 절대음감에 대한 신화도 격파한다. 네안데르탈인과 꾀꼬리는 절대음감을 가졌다. 대부분의 현생 인간은 영유아기에 언어를 익히기 위해 절대음감을 포기하는 대신 상대음감을 발달시킨다. 아빠의 저음과 엄마의 고음의 높낮이를 엄밀히 구분하는 건 언어의 보편적 맥락을 습득하는 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애당초 언어와 하나였지만 분리돼 나오면서 점점 생존과 동떨어진 흥미로운 진화를 해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음악의 리듬이 뇌에서 운동을 관장하는 부분과 연결된 것은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책은 뇌 과학자들에게 크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신생아부터 숙련된 재즈 피아니스트까지 다양한 인간을 비좁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에 밀어 넣고 실험 결과를 도출했다.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개 여기서 나온다.

음정과 음색에 관한 좀 어려운 해설을 담은 내용을 뺀다면 음악 문외한도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그 노래’만 들으면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음치라며 손사래 치던 부장님이 왜 마이크만 잡으면 노래를 꽤 하는지에 대해 그럴듯한 해석이 담겨 있다.

‘…음악은 거의 무한정 다양한 감성적 뉘앙스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테러 정권도 음악을 금지하는 데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본문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