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표준어 ‘담벼락’도 재미있는 낱말이다. 담이나 벽 따위를 통틀어 이르거나, 아주 미련해 어떤 사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말맛이 맛깔스러워선지 ‘담벼락을 걸으며∼’ 등으로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다.
담벼락은 ‘담’과 ‘벼락’이 합쳐진 낱말인데, 벼락은 경기 황해 지역에서 쓰는 ‘벼랑’의 방언이다. 즉 표준어와 방언이 만나 표준어가 된 셈이다. ‘힘’의 방언인 ‘심’이 ‘팔심’ ‘뱃심’ 같은 말에 붙어 표준어로 인정받은 것과 비슷하다.
과연 그럴까. 담구락 담벡은 방언이라 인정하고, 담벼랑은 1960∼70년대에 쓰이다 입길에서 사라졌으니 그렇다 치자. 허나 담벽은 입말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담벽을 문화어로 삼고 있다. 담벽은 담벼락 못지않은 언어 세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려 ‘담벽’을 복수표준어로 삼는 걸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비알’의 처지도 담벽과 비슷하다. 우리 사전은 몹시 험한 비탈을 뜻하는 ‘된비알’을 ‘된비탈’과 같은 뜻으로 보고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 놓고선 ‘비알’은 ‘벼랑’과 ‘비탈’의 사투리라고 한다. ‘된비알’이 표준어라면 ‘비알’도 표준어라야 옳지 않을까.
사전이 언중의 말 씀씀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정신 차려, 국어사전’이라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이크, 그러고 보니 필자 역시 우리 사전을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닌지. 뜻밖의 상황에서 내는 ‘이크’란 감탄사도 얼마 전에야 비로소 북한어에서 우리말이 됐다. 어문정책이 가끔은 담벼락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