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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1980년대 경음악으로 듣던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입력 | 2015-10-06 03:00:00


비제

1980년대, 집에 새 오디오를 갖추게 된 저는 ‘빵빵한’ 소리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바빴습니다. 놀러온 친구들은 팝송을 듣고 싶어 했지만 저는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었죠. 곧잘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음악이 드뷔시 ‘아라베스크 1번’과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귀에 익은 그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이었습니다. “클래식밖에 없어?” 하며 따분한 표정을 짓던 친구들도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어? 이게 클래식이었어?”

드뷔시의 곡은 당시 한창 인기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 시그널 곡이었습니다. 원곡은 피아노곡이지만 일본 신시사이저 연주자인 도미타 이사오의 연주로 방송을 자주 탔죠. 휘파람 소리를 연상시키는 시원한 합성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제의 곡은 본디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이지만 폴 모리아 악단이 경음악 ‘Pearl Fishers’로 편곡해 역시 FM 대중음악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새파란∼ 수평선∼’이란 가사로 익숙한 노래 ‘진주조개잡이’와는 다른 곡입니다.

이렇게 클래식 작품이 대중음악에 뛰어들어 인기를 얻는 사례는 많습니다. 가을에 즐겨 듣는 에릭 카먼의 팝송 ‘All by myself’나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도 각각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에서 느린 악장 주선율을 따서 편곡한 노래죠.

국립오페라단이 15∼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를 국내 초연합니다. 선사시대 실론 섬이라는 색다른 배경에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사전지식 없이 이 공연을 보는 40대 이상의 옛 대중음악 팬이라면, 1막에서 남자 주인공 나디르가 부르는 ‘귀에 익은 그 음성’을 듣고 움찔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 제목이 ‘진주조개잡이’더니, 진짜 옛날 폴 모리아가 연주하던 선율이네!”라고요.

이 선율도 아름답습니다만, 이 노래보다 앞서 나오는 남자들의 2중창 ‘성스러운 사원에서(Au fond du temple saint)’를 비롯해 실로 아름다운 선율이 많이 나오는 오페라입니다. 다재다능했던 작곡가 비제가 펼쳐 내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카르멘’과는 사뭇 다른 세계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