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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1만개 금융지원으로 연명… 투자-고용에도 악영향

입력 | 2015-09-23 03:00:00

[‘한국경제 新뇌관’ 기업부채]




효성그룹 계열사 진흥기업은 2010년에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이 실시한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C등급을 받으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자 효성은 ‘진흥기업을 그룹 차원에서 살리겠다’는 각서를 은행에 냈다. 우리은행은 자칫 수백억 원의 대출을 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진흥기업에 B등급을 매겼다. 하지만 진흥기업은 2011년에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우리은행은 관련 대출을 ‘못 받을 위험이 큰 여신’으로 분류하고 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그만큼 은행 순이익도 감소했다.

기업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은행들이 ‘좀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한국 경제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외 경제가 위축되면서 기업 실적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한계 기업들의 부실이 동시다발로 터지면 정부가 손쓸 틈도 없이 위기가 확산돼 경제 시스템 전반이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부실에 관대한 관행이 ‘좀비’ 양산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마다 업종별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해 부실기업을 솎아 내고 있다. 조선, 건설, 해운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구조조정 리스트에 포함됐지만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부실의 몸통은 여전하다고 경제계는 보고 있다.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못 갚으면서 금융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의 자산이 전체 기업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3%에서 2013년 15.6%로 증가했다. 이런 좀비 기업의 자산은 과거에는 건설업, 운송장비업 등 일부 업종에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전기전자, 기계장비, 서비스업 등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기업 수로 따지면 1만 개 안팎이 좀비 기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국이 주채권 은행을 독려해 수시로 신용평가를 하는데도 좀비 기업이 줄지 않는 것은 부실이 드러나도 은행들이 부실기업을 적극적으로 솎아 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클수록 여신 규모도 큰 만큼 대기업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회생 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정책 금융기관의 경우 애초 우량 사업이라고 평가해 기업에 자금을 대 줬다가 나중에 부실이 생긴 걸 인정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순이익을 의식해 기업을 솎아 내는 데 주저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 기업들 실적 부진에 투자 여력 잠식

최근 한국 기업들은 수출 급락과 내수 위축으로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실제 성동조선, ㈜한진 등 주채권 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기업들은 자구 노력을 진행 중이지만 글로벌 경기 불안 등이 맞물리면서 실적과 재무 건전성을 단기간 내 동시에 개선하기 힘든 상황이다. 동부건설은 상반기(1∼6월)에 121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봐 3년째, 현대상선은 589억 원 영업 손실로 5년째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로선 생산성이 높고 고용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 금융 지원을 집중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회생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기업도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 은행들이 1990년대 초에 좀비 기업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하락했던 것과 같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 기업이 건설과 조선업 등 일부 업종에 여전히 많다는 점을 심각하게 본다. 이에 따라 빚 갚을 능력, 기업의 생산성, 미래 사업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좀비 기업이 몰린 업종부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짊어진 좀비 기업을 줄여 나가되 정부와 산업은행이 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면서 금융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접점을 찾도록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홍수용 / 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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