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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이병철 박태준의 ‘진정한 극일’

입력 | 2015-08-19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경영하면서 3단계 대일(對日) 전략을 강조했다. 일본의 힘을 아는 지일(知日)과 이용하는 용일(用日)을 거쳐 일본을 이기는 극일(克日)로 나간다는 전략이었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우리보다 앞선 일본에서 배운 뒤 반드시 일본을 극복하자”고 자주 역설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깼다


이병철과 박태준은 와세다대에서 공부한 경험도 있어 일본과 인연이 깊은 기업인이었다. 끊임없이 일본을 연구했고 “일본이 해낸 일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식이 강했다. 이병철의 사업보국이나 박태준의 제철보국 정신의 바탕은 식민지 조국의 비애와 6·25전쟁의 비극을 거치면서 잉태된 강한 애국심이었다.

이병철이 씨앗을 뿌린 삼성전자는 지난해 브랜드컨설팅사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100대 기업 브랜드 평가에서 세계 7위,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은 세계 64위, ‘워크맨 신화’의 소니는 52위였다. ‘감독 박정희, 주연 박태준’의 작품인 포스코는 철강분석기관 WSD의 세계 철강회사 경쟁력 평가에서 올해까지 6년째 1위 자리를 지켰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 한다는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을 따라잡으려 했던 이병철과 박태준은 ‘진정한 극일’을 성취했다.

한반도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변수다. 올해 광복절을 전후해서도 “한국은 친일파들이 득세해온 나라”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남한보다 북한이 식민지 유산을 제대로 극복했다고도 강변한다.

몇 년 전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몇몇 정치인의 부친이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이 문제가 단순논리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남한의 친일파 청산이 미흡하긴 했지만 이승만 정권과 김일성 정권의 초대 내각에서 친일파는 북한이 더 많았다. 지금 북한은 최악의 압제와 빈곤 속에서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걸핏하면 손을 내미는 처지다. 남북한의 어느 쪽이 식민지 유산의 극복에 더 가까이 다가섰을까.

나는 일본 국민과 사회의 강점을 평가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일본은 역사 문제에서 한계를 지닌 나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일 관계는 때로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다만 가끔 파도가 치더라도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까지 치닫진 않도록 양국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절제와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잘사는 게 제일 멋진 앙갚음”이라는 말이 있다.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지닌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과거 10배를 넘었던 한일 경제력 격차는 작년 3.3 대 1로 좁혀졌다.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최상의 극일 전략이다. 풍요롭고 강력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과제를 방해한다면 그것이 누구든 내분과 무능으로 나라를 잃은 구한말 지도층과 다를 바 없다.

‘부강한 대한민국’이 답이다

작가 겸 평론가 복거일은 2003년 8월 15일 저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를 출간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章)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보고 걸어 나가는 일이다. 식민지의 경험이 남긴 엄청난 장애들을 넘어선 민족에 어울리는 자긍과 낙관으로. 비록 끊임없이 덧나는 상처들이 우리 가슴을 아픔과 분노로 채우지만, 그래서 언제까지나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더 큰 아픔과 분노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어른거리지만.”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