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논설위원
세 번째 검찰 수사의 치욕
모사드는 국내 보안국인 신베트와 함께 음지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떠받친다. 무기 개발·밀수 등으로 안보를 위협하는 해외의 적을 주로 제거한다. 모사드가 신뢰받는 것은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운영 과정의 기본과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취임 후 이 원장은 비대한 국정원장 비서실을 축소하며 내부 개혁에 힘을 쏟았다. 순수 국내 정치정보는 청와대 보고 항목에서 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취임 후 처음으로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를 방문해 힘을 실어줬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국정원이 해킹 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이 원장은 최근 “해킹 대상은 해외의 공관원 등으로 국내 민간인 사찰은 없다”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원장이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를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번 정부에서만 대선개입 댓글 사건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두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다. 새정치연합이 23일 원세훈 전 원장 등을 고발함에 따라 세 번째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국정원 해킹 의혹의 핵심은 스마트폰을 불법 감청해 대국민 사찰을 했느냐다. 그러나 야당이 낸 고발장은 핵심을 비켜나 일부 언론 보도를 스크랩해 놓은 수준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에 ‘범죄 혐의가 있다고 사료(思料)될 때 수사한다’고 돼 있다”고 했다. 사료는 ‘깊이 생각해 헤아린다’는 뜻이다. 바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서진 않고 뜸을 들이겠다는 의중이 읽힌다.
국정원의 한심한 집단성명
야당의 무차별 사찰 의혹 제기로 국정원이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 19일 ‘국정원 직원 일동’ 명의의 집단 성명이 공표됐다. 일동이라면 이 원장도 포함된다. 모사드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해 ‘모빠’ 별명이 붙은 그의 결재 없이 성명이 나왔을 리 없다. 정보기관까지 전교조 교사처럼 집단 성명을 내는 나라의 꼴이 한심하다.
모사드는 공작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설혹 들통나도 침묵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 이 원장이 내부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국회 정보위에 정보 공개를 덜컥 약속한 것이나 집단 성명을 허가한 것은 외국 정보기관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모사드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의 수장답게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