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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창규]‘나쁜 알바’ 끔찍했던 기억

입력 | 2015-07-03 03:00:00

폭언… 체불… 16년전이나 지금이나
착한 알바 선포식이 희망의 싹 되길




박창규 기자

1999년 이맘때 생활정보지의 공고에 시선이 꽂혔다. ‘전단지 배포, 시간당 5000원 당일 지급.’ 시간당 2000∼2500원을 받던 편의점이나 PC방 아르바이트와 비교하면 꽤 큰돈이었다. 게다가 당일 지급이라는 조건도 매력적이었다.

면접은 간단했다. 다음 날 오전 6시부터 ‘차 담보 대출’이란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크기의 전단을 돌렸다. 직원은 기자를 차에 태운 뒤 적당한 곳에 내려줬다. 그 동네를 쭉 훑으며 전단을 차에 꽂으면 된다고 했다. 여름날 아침 햇살은 생각보다 뜨거워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다. 시원한 생수 한 병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시급의 5분의 1이 사라지니까. 6시간을 돌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수당은 일주일 치를 한 번에 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당일 지급은 거짓이었다.

나흘째. 그날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골목 어딘가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검은색 승합차가 다가왔다. 손목에 문신을 한 남자가 억센 억양으로 “넌 뭐 하는 놈이냐. 하긴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이걸 꽂은 네 손이 잘못이지”라며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허공에 휘둘렀다. 그는 “다음부턴 이 구역에 얼씬도 하지 마라”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들도, 기자에게 겁을 준 사람도 모두 폭력배였다. 수당을 받기까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심지어 통장에 들어온 돈은 받아야 할 수당의 70%에 불과했지만 마땅히 도움 받을 곳도 없었다.

동아일보가 최근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알바몬과 진행한 ‘착한 알바 수기 공모전’에 접수된 300여 통의 사연에서도 이런 경험 사례가 여럿 눈에 띄었다. 적지 않은 청년이 ‘갑을(甲乙) 관계’나 폭언, 임금 체불을 당연하게 여겼다. 알바에 대한 부당행위가 아직도 일상적으로 번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자의 끔찍했던 알바 경험이 생생하게 ‘진행형’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고쳐보려고 동아일보가 1일 ‘착한 알바 선포식’을 열었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착한 알바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뜻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직접 참석해 건강한 알바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쉽진 않겠지만 너나없이 모두가 ‘청년 알바 지킴이’로 나서야 어둡기만 했던 청년 알바에도 희망의 싹이 틀 듯하다.

박창규·사회부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