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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그레이, 지금이 골든타임”… 은행들 중장년 모시기

입력 | 2015-06-16 03:00:00

전원생활 친구 모임 지원하고… 재테크-명사 강연 등 제공
특정 신탁 가입땐 건강-상속관리… 사무실로 출장 마사지 서비스도




KB국민은행이 중장년층 고객을 대상으로 연 명사특강에서 한 고객이 강의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최근 금융회사들은 강연, 건강관리, 사회적 관계 형성 등 중장년층 고객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 제공

최모 씨(77)는 8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은 미국에서 생활해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최 씨는 2년 전 허리수술을 받은 뒤 기억력이 부쩍 나빠지자 혼자 지내는 게 무리라고 판단해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계속 나빠지는 기억력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치매에라도 걸리면 요양원에 계속 있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또 요양원에 있더라도 요양원 비용이나 병원비는 제때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최 씨는 우연히 시중은행의 특정 신탁상품에 가입하면 은행이 의료비 등을 지급하고, 상속 절차를 돕는 시니어 전용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 씨는 “은행 덕분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은행들 노년 고객 잡아라

요즘 시중은행들은 시니어(중장년층)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전쟁을 한창 벌이고 있다. 고령화 진행 속도가 빨라지면서 은행 고객의 연령대도 자연스레 높아진 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물질적으로 여유로우면서도 여가생활과 건강, 명예를 모두 챙길 수 있는 ‘골든 그레이(풍요로운 노년)’를 지향하는 게 마케팅의 특징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내놓고 있는 골든 그레이 서비스는 크게 강연, 사회적 관계 형성, 건강관리 등으로 구성된다.

강연은 노후의 행복한 삶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적인 내용 위주로 진행된다. 세법, 부동산투자 등 재무 관련 강연과 ‘건강한 노후준비’, ‘은퇴 뒤 행복해지는 법’ 등 비재무적 강연 이 있다. KB국민은행이 은퇴설계 상품인 ‘KB골든라이프’에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재테크 특강과 명사 특강을 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시니어끼리 친구를 만들어 주는 데 공을 들이는 금융회사들도 있다. 중장년층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적다는 점에 착안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시니어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NH농협은행이 귀농·귀촌을 꿈꾸는 시니어 고객을 위해 운영 중인 전원생활 체험 프로그램이 그중 하나다. 경기 여주시, 연천군 등 고객들의 관심이 높은 귀농 희망지역에서 70명 정도가 한 팀이 돼 농사 체험을 하게 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전원생활 체험을 통해 시니어 고객끼리 서로 가까워지고 사적으로 소모임을 만든다”며 “귀농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함께 농촌생활을 설계하는 동반자로 발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자산가 시니어 위한 회원제 서비스도

최근에는 신탁 계약을 통해 고객이 살아있을 때에는 건강을, 사후에는 상속 문제를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직까지는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회원제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금융회사들은 수요가 늘어나면 일반 고객으로도 확대할 방침이다.

하나은행은 고객이 3억 원 이상을 맡기면 맡긴 금액에서 평생 의료 경비를 지급하고 사후에 남은 금액은 계약자가 미리 지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상속 또는 증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녀와 멀리 떨어져 살거나 치매를 우려하는 중장년층이 주요 고객이다. 사후 1억 원 이상을 분당서울대병원에 기부하기로 계약하면 병원 내 전담팀으로부터 VIP 고객 서비스를 받는다. 병원을 찾으면 전문 의전 프로그램에 따라 안내를 받으며 진료도 상세히 받을 수 있다. 살아있을 때에는 연 1.75%의 이자를 수익으로 받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고령화로 수요자가 늘어날 경우 가입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채소가 상하기 쉬운 7, 8월을 제외하고 매달 친환경 유기농 채소를 배달해주며 시니어 고객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고객이 원할 때 자택과 사무실로 개인 트레이너를 보내 근육마사지와 스트레칭을 돕기도 한다.

이처럼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시니어 전용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는 고령화로 고객층의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는 데다 초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금리만으로는 다른 금융회사들과 차별성을 갖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는 전체의 12.7%(639만 명)이며 2026년이면 고령층 인구가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시니어 고객을 위해 간병인 제공, 병원 예약, 집안 관리 서비스 등을 내놓고 있다.

황원경 KB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앞으로 경제력을 갖춘 시니어들이 전 산업에서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저금리 기조 아래서는 레저, 건강 등 고객의 다른 욕구를 채워주는 금융회사로 고객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