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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풀-꽃-흙과 함께 6주일… “아이들 뇌와 몸이 달라졌어요”

입력 | 2015-06-13 03:00:00

‘4세 아동 숲속 활동’ 관찰실험 리포트
서울대 이순형 교수 연구팀, 週 3회 숲속 교실 실험했더니
(1) 동식물에 대한 사랑 생겨나고
(2) 자연분야 지식 126% 상승
(3) 방향-거리 공간인지능력 쑥쑥
(4) 집중력 살아나 문제해결 척척
(5) 운동능력도 평균 28% 늘어나




서울대 이순형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아이들을 숲에서 놀게 할 경우 자연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고, 신체 능력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집중력도 높아져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노스페이스 제공

“자 지금부터 보물을 찾아볼까요?”

지난달 말 경기 과천시 대공원광장로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을 찾은 아이들. 보물을 찾자는 숲해설가 임정현 씨의 말에 7∼9세 아이 10명의 눈은 반짝였다. 아이들은 숲 속에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꼼꼼히 살폈다. 흙과 풀 사이를 손으로 제치며 열중했다. 이내 “찾았어요”란 외침이 들려왔다.

신이 난 아이가 숲해설가에게 뛰어가 내민 건 바로 단풍나무 씨앗. 숲의 원천이 되는 씨앗을 찾아오는 게 아이들에게 내려진 과제였다. 숲 체험 교실에 참여한 아이들은 숲길을 따라 꼬박 2시간을 걸으면서도 지친 내색이 없었다. 애기똥풀, 박주가리 씨앗…. 생소하기만 한 숲 속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였다.

숲해설가가 노랗게 핀 작은 꽃을 가리키며 꽃 이름을 말해주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꽃의 이름은 애기똥풀 꽃.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진액 때문에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해주자 아이들은 다시 한번 까르르 웃는다. 왜 똥풀, 그것도 왜 애기똥인지 상상하는 듯했다. 꽃잎을 따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 풀을 코에 가까이 대 킁킁거렸다. 꽃을 직접 따 냄새를 맡아보는 일 하나도 평소에는 해본 적 없던 일이다. 풀 냄새가 신기한지 아이들은 몇 번이고 풀을 코에다 가져갔다.

숲해설가는 꽃의 줄기에서 나온 진액을 바르면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고 설명해줬다. 손에 진액을 발라주려는데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어느새 너도나도 진액을 발라 달라며 손을 내민다. 아이들은 식물을 만지고 냄새를 맡고 손에 발라 보면서 식물의 모양과 냄새 그리고 쓰임새까지 자연스레 익혔다. 덩달아 숲에도 금세 친숙함을 느끼는 듯했다.

이때 아이들을 반기듯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 위를 쪼르르 올랐다. “다람쥐다”라고 소리치며 신기해하던 아이들은 숨죽여 숲 속 친구가 멀어질 때까지 지켜봤다. 숲 활동의 마무리로 나뭇조각에 그림을 그려보는 시간. 아이들은 나무 씨앗의 모양까지 뚝딱 그림으로 그려냈다. 애기똥풀, 다람쥐, 나비 등 그날 본 숲 속 생물들은 그림에 모두 등장했다. 15년째 숲해설가로 활동 중인 임정현 씨는 “숲 체험 활동을 시작하기 전과 2시간 동안의 활동을 마친 후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로 다르다. 길지 않은 시간의 차이지만 아이들이 훨씬 맑아졌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숲에서 다람쥐와 나비 등을 관찰하며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과 자연보호 의식을 학습한다. 섀르반·노스페이스 제공

숲에서 놀다, 자연에 다가가다

숲 활동을 통해 당장 나타나는 변화는 자연과 친해지는 것이다. 이는 수치로 증명된 부분이기도 하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이순형 교수 연구팀과 함께 숲 활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숲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하고, 동시에 이를 위한 다양한 제품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연구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월 동안 만 4세 아이들 80명(통제집단 40명, 실험집단 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험집단에 속한 40명은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와 경기 이천시의 SK하이닉스 내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초부터 6주 동안 1주일에 세 번씩 숲을 찾았다. 활동은 ‘자연과 교감―자연물 알고 탐색하기―자연물로 활동하기―자연현상 추론하기’ 등의 순서로 이뤄졌다. 6주간의 숲 활동을 마친 후 신체, 인지, 사회정서 등 3가지 영역에서 감지되는 아이들의 변화를 살폈다. 숲 활동을 하지 않은 통제집단과 비교도 했다. 3가지 영역의 6가지 부문에서 아이들의 변화를 관찰했다. 부문별로 5∼10가지의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를 종합하고 통계기법을 활용해 수치를 정량화했다.

숲 활동 이후 우선 나타난 변화는 자연친화적 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자연친화적 태도는 동식물에 대한 애호와 관심,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 자연보호 의식 등을 의미한다. 숲 활동 프로그램에 앞서 진행된 자연친화적 태도 사전조사에서 실험집단 아이들은 통제집단에 비해 약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6개월의 활동이 끝난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통제집단보다 약 19% 늘어난 3.72를 기록하며 자연친화적 태도가 늘어났음이 확인됐다.

자연친화적 태도는 동식물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면 꽃 하나를 보여주며 이것에 대해 말해보라고 묻는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꽃이에요”라고 단순하게 얘기한다. 그 다음 무슨 색깔인지 얘기하거나 크기를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숲 활동을 한 아이들은 달랐다. “그때 숲에서 본 국화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숲 활동을 한 아이들은 꽃을 보며 “예뻐요”, “기분이 좋아요”라며 감정을 표현했다. 숲에서 노닐며 꽃향기를 맡은 기억이, 꽃을 봤을 때 긍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숲길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줬을 때도 숲에서 놀았던 아이와 숲에 가보지 않았던 아이의 차이는 나타났다. 숲을 접해보지 않았던 아이는 숲길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바람이 불 것 같아요” “무서워요”라고. 이랬던 아이가 숲에 다녀오면 “재밌어 보여요, 저 숲길에는 도토리가 있을까요”라고 반응했다.



숲을 알다, 뇌를 깨우다

숲 활동은 아이들의 자연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데도 영향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 자연지식 조사에서 0.57의 수치를 기록한 실험집단 아이들이 숲 활동 체험 후 진행한 사후조사에서 126% 상승한 1.29의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는 25%의 증가율을 보인 통제집단에 비해 무려 5배나 높은 수치로 숲 활동이 단순히 자연을 접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숲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무엇보다 호기심이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연구에 참여했던 김대웅 조교는 “숲 활동을 한 이후 아이들이 질문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숲에 나가길 꺼려하던 아이들이 나간다는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그 다음 단계는 자기가 보는 것을 궁금해한다. 처음에는 나무를 보기만 하던 아이들이 ‘나무의 뿌리는 어디로 가는지’, ‘가지에 달렸던 나뭇잎은 왜 떨어지는지’ 등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 질문이 많은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건 당연하다.

단순히 지식이 늘어나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다.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지적 능력 자체가 향상됐다. 공간인지능력이 대표적이다. 공간인지능력이란 특정 물체와 자신 간의 위치관계, 즉 방향, 거리, 크기 등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측정하는 방법은 예를 들어 삼각형의 도형을 보여준 뒤 별 모양을 보여준다. 그 다음 별 모양 속에서 삼각형을 찾게 하는 식이다. 또한 입체적인 블록에서 색칠한 부분을, 분해해 놓은 블록의 보기 중에서 고르게 하는 식으로 측정한다. 실험 결과, 숲 활동을 한 아이들은 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과제를 수행하는 비율이 높았다. 수행시간에서도 월등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공간인지 관련 문제를 푸는 수행 항목에서 실험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 증가율이 2배가량 높았다. 과제 수행의 시간을 쟀을 때는 실험집단이 사전 조사 때보다 수행 시간을 1.3초 단축한 반면 통제집단은 수행시간이 오히려 0.45초 증가했다.

숲 활동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주의집중력에도 효과를 가져왔다. 실험 결과, 각 문항의 수행력을 측정하는 항목에서는 두 집단 모두 증가 폭에 큰 차이점이 없었다. 그런데 수행시간에서는 실험집단이 기존 6.74초에서 무려 1.62초를 단축한 5.12초를 기록해 6.73초를 기록한 통제집단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몸이 자란다, 숲을 닮아가다

숲에서 노는 것은 신체 능력도 향상시켰다. 연구팀은 아이들의 대근육 운동능력을 측정했다. 대근육 운동능력은 고정운동, 이동운동, 사물조작 등 크게 3가지 세부항목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고정운동은 아이가 무게중심을 잡고 평형을 유지해 자신의 신체를 제어하는 능력을 뜻한다. 한 발을 들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얼마 동안 서 있는지 등을 통해 측정한다. 이동운동은 걷기, 달리기, 높이뛰기 등 이동하는 능력이다. 측정을 위해서는 뒤를 보며 뒷걸음질로 목표물을 향해 똑바로 걷는지,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제자리에 똑바로 두는지 등의 실행 여부를 관찰하고 그 시간을 측정한다. 사물조작은 어떠한 물체를 던지고 받는 능력을 말한다. 과녁에 공을 똑바로 던져 맞히거나 하는 식이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 실험집단은 각각의 항목에서 평균적으로 28% 상승한 반면 통제집단은 미미한 증가율을 보이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세부적으로는 사물조작 능력이 약 60%의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으며, 고정운동 능력과 이동운동 능력은 각각 17%, 1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연구를 총괄한 이순형 교수는 “6주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숲 활동을 했음에도 신체적 능력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변화가 더 잘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숲 활동을 권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신체활동량도 늘어났다. 연구팀은 신체활동량 조사를 위해 보행 수, 보행거리, 소비한 칼로리 등 총 3가지로 항목을 구분해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집단 및 통제집단은 숲 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측정 기구를 착용한 채 활동했으며, 더욱 정확한 측정값을 산출하기 위해 총 18회 동안 축적된 수치의 평균값을 매겨 비교했다.

사실 통제집단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무런 신체활동을 안 했던 것이 아니다. 평소처럼 유치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했다. 통제집단이 머물렀던 서울대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일반 유치원에 비해 넓은 실내 운동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숲 활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실험집단 아이들은 통제집단보다 보행수 및 보행거리에서 4배 이상 많고 길었다. 소비한 칼로리의 경우에도 실험집단은 38.74Cal를 소모한 데 반해 통제집단은 8.50Cal를 소모하는 데 그쳤다.

이 교수는 “이런 숲 활동을 많은 아이들이 하게 하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스웨덴에서는 만 6세 아이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자주 숲에서 수업을 한다. 그 속에서 언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운다. 숲이 교실인 셈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우리 아이 햇볕 너무 오래 쐬면 안 된다’, ‘우리 아이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할 거냐’는 학부모의 항의가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숲에서 뛰노는 것은 아이들의 신체활동을 늘리고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이는 긍정적인 순환을 가져온다. 숲 활동에 참여했던 한 남자아이는 아무데서나 뛰어다니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맘껏 뛰놀 수 있는 숲 활동을 하게 되자 숲 활동을 기다리며 산만한 활동을 줄이게 됐다. 그로 인해 칭찬을 받으니 더 차분해지는 선순환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었던 에너지를 맘껏 쓰게 하고, 그 에너지를 쓸 때까지 기다리면 칭찬받는다는 걸 인지하게 함으로써 정서를 차분하게 만든 것이다. 평소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곤 했던 한 여자아이도 숲 활동 이후 그런 증상이 사라졌다.

아이들이 숲에서 찾은 진정한 보물은 바로 그것, ‘숲을 닮아가는 나’였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  / 과천=이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