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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숙종]한국도 민주주의 지원에 나서야 한다

입력 | 2015-06-02 03:00:00

최근 10년 글로벌 자유 위축… 개도국 민주주의 위기 직면
분단, 가난, 압제 극복하고 모범적 민주주의 성취한 한국
민주화 경험 전수엔 소극적
어떤 원칙으로 지원할지, 어떤 기관이 주도할지 이젠 심도있는 논의 시작해야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6월은 한국 민주화에 기폭제가 되었던 6월 민주항쟁이 있는 달이다. 한국은 냉전과 분단, 그리고 가난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랜 투쟁 끝에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해 비판도 있지만 1987년 민주체제로의 이행 이래 공고화되고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성공 스토리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왜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옹호와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을 외국 인사로부터 종종 받는다. 우리는 경제성장 경험을 해외에 알리고 확산시키는 데는 적극적인 반면 민주화 경험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그 이면에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외국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만큼 민주주의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긍지가 경제성장만큼 확고하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외 원조를 할 때도 한국은 서구 국가처럼 인권 옹호나 민주적 법의 지배 같은 요건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경제개발을 우선시하고 거버넌스 지원이라 해도 정부 역량 강화를 돕는 정도에 그친다. 원조를 받는 해당 국가의 정부와 마찰을 빚을까 우려하여 시민사회 집단들에 대한 직접적 지원은 피하는 편이다.

최근 세계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05년까지 늘어나던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선거민주주의 국가의 수는 줄거나 정체되어 62%에 그치고, 선거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자유를 적극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45% 선을 맴돈다. 프리덤하우스의 자유지표를 보아도 최근 10여 년 자유가 신장되지 않고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나라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재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으로 중동에서 불던 거대한 민주화의 열풍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혼란과 고통이 잇따르고 있다. 이집트에는 권위주의 정부가 다시 들어섰고 시리아는 끝 모를 내전과 테러에 휩싸여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가져왔다. 전직 정부 수반의 모임인 마드리드 클럽은 민주주의의 위기는 개발도상국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위기와 실업률의 증가로 선진국 민주주의도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이들의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은 개도국 민주주의 지원을 위축시키고 있다.

보수와 진보세력 간 이념 대립, 책임보다는 권한만 주장하는 집단이기주의, 법치를 위협하는 편법과 불법 관행 등 자신의 문제도 적지 않은 한국이 흔들리고 있는 글로벌 민주주의의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민주주의가 진선진미한 제도는 아니지만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제도는 찾기 어렵다. 또 민주주의는 개발의 혜택을 다수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도 효과적이며, 분쟁 발생 시 무력보다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여 국제평화에도 기여한다. 우리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뿌리내리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다. 소위 선진 민주국가들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동시에 외국의 민주화를 지원한다. 많은 개도국들은 서구식의 민주주의 지원을 이질적이고 간섭적으로 보는 반면 가난과 압제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지원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 누구에게 어떤 원칙과 규범으로 민주주의를 지원할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조차 없고 민주주의 지원을 위한 국제적 활동을 주도할 만한 마땅한 기관도 없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으로 분열된 미국을 단결시키고 민주주의의 옹호와 확산을 미국의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기 위해 의회 지원을 받는 민간재단으로 민주주의재단(NED)을 1983년에 설립하였다. 동 재단의 칼 거슈먼 소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도 초당적으로 국회 지원을 받는 기관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1월 동 재단은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서울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세계운동(WMD)’을 연다. 이를 계기로 한국도 북한을 비롯해 압제로 고통 받거나 민주적 제도가 불안정한 세계 도처에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6월 항쟁으로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가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때다.

이숙종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