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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사격 없이 훈련… 실탄 10발든 탄창 지급해 피해 커져

입력 | 2015-05-14 03:00:00

‘관심병사 출신’ 관리허술… 제지도 안받고 사격훈련 참가




“어어, 저 사람 왜 저러지….”

13일 오전 10시 37분경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52사단 예하 예비군 부대 내 사격훈련장. 동원훈련 이틀째 사격훈련을 하던 예비군들의 시선이 사로(射路)에 엎드려 있던 최모 씨(23·사망)에게 집중됐다.

‘사격 개시’라는 구호에 따라 각 사로에서 예비군들이 수준유지사격(10발 발사)의 첫 발을 쏜 직후였다. 최 씨가 갑자기 뒤돌아 일어서 실탄이 장전된 K-2 소총을 바로 뒤에 앉아있던 다른 예비군(부사수)에게 겨눴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총성과 함께 사격장은 순식간에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최 씨는 옆 사로의 다른 예비군들을 향해 총격을 했다. 황모 씨(22) 등 4명이 머리와 가슴, 배 등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쏟아졌고 사격장엔 유혈이 낭자했다.

13일 오전 예비군 훈련 중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육군 52사단 예하 송파·강동 예비군 훈련장 사격장의 모습. 왼쪽 점선 부분이 예비군 최모 씨가 총기를 난사한 장소다. SBS 제공

사격장에 모였던 예비군 200여 명이 한꺼번에 대피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또다시 ‘탕’ 하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최 씨가 자신의 총기를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박모 씨(24)와 윤모 씨(24)는 치료 도중 숨졌다.

사건이 발생한 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 발표에 이어 중국을 방문한 김요환 육군참모총장(대장)도 현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총기난사 최씨 시신 수습 13일 오전 예비군 훈련 중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육군 52사단 예하 송파·강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군인들이 가해자인 최모 씨의 시신을 구급차 쪽으로 옮기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군은 부대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육군 중앙수사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수사 인력 68명과 기무 헌병 인사 감찰 법무 등 5부 합동 조사단을 현장에 보내 감식과 부검을 하는 등 사건 경위 조사에 나섰다.

최 씨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과 울분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 전날 그는 자필로 쓴 유서에서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2013년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최 씨는 현역 복무 당시 ‘B급 관심병사’로 분류돼 동료들의 집중 관리를 받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예비군 부대에 전달되지 않았다. 최 씨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사격훈련에 참가했다.

이번 사건은 예비군 사격훈련의 규정 미비가 빚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많다. 사고 당시 20개 사로에서 진행된 예비군 사격훈련의 통제요원은 위관급 간부 3명과 조교(병사) 6명 등 9명에 불과했다.

육군은 동원훈련을 담당하는 향토사단에서는 가용병력이 많지 않아 부대 지휘관의 재량과 판단에 따라 사격 통제요원을 운용한다고 설명했다. 훈련 인원을 고려한 통제요원의 배치 규모 등 관련 안전규정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사격절차 규정도 허술했다. 해당 부대는 실탄 10발이 든 탄창을 예비군들에게 지급한 뒤 가늠자 조정을 위한 영점사격(3발)을 하지 않고 곧바로 수준유지사격(9발)을 했다. 예비군의 숙련도가 높아 부대 지휘관이 영점사격을 생략했다는 게 육군의 설명이다.

영점사격을 먼저 실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규정이 있었다면 추가 사격을 위해 탄창을 갈아 끼워야 해 만일의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수사 관계자는 “사건 당시 최 씨의 사로를 비롯해 일부 사로의 총기를 고정하는 안전고리가 풀어진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전날 입소한 최 씨가 전날 부대에서 다른 예비군들과 충돌이나 불화가 있었는지, 개인적 분노를 품은 ‘묻지 마 범죄’인지 등은 군 당국이 풀어야 할 대목이다.

군 관계자는 “최 씨와 사상자 4명이 같은 중대 소속으로 확인됐다”며 “사건현장에 있었던 예비군들을 상대로 최 씨의 행적 등에 대해 진술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최 씨의 휴대전화 내용을 분석하는 한편 유족 진술을 토대로 범행 단서를 찾고 있다.

일각에선 예비군 훈련의 ‘느슨한 군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예비군 사격훈련 시 군이 방탄복 등 보호장구를 제공하는 등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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