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지음/배명자 옮김/312쪽·1만4000원·책세상
이쯤 되면 이 책을 지겨운 인생지침서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록, 힙합을 좋아하며 남의 죽음에 대한 기사만 죽자고 쓰는 철학자의 별난 독백을 코미디 프로 보듯 엿보면 그만이다. 책의 미덕은 그의 수다스러움에, 변덕스러운 단문의 연쇄에, 지독한 냉소에 있으니까. 그는 당신에게 조언을 잔뜩 해주고 돈을 받으려는 철학자의 궤변에 신경 끄라고 말한다. 차라리 오스트리아 밴드 오퍼스의 ‘라이브 이즈 라이프’, 영국 밴드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라이프 이즈 포 리빙’ 같은 노래가 삶의 진실에 더 다가간다며 스스로 궤변 하고 수다 떤다.
저자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목차와 다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자동기술에 가까운 수다의 삼림으로 독자를 안내하다 마지막 나뭇가지를 젖히고 문득 뜻밖의 새 질문을 던지며 각 장을 마무리한다. 간간이 파란 글씨로 자신이 쓴 추모기사 일부를 삽입했다. 그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죽기 전 당신은 당신 삶을 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