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1일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표는 왜 부끄러운지에 대해선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속뜻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 대표가 전작권 전환 연기나 사드 배치론을 비판하려면 현재로선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비롯해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단지 “중국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권국가로서의 자기방어 수단을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에 기울어진 부끄러운 신종 사대주의가 아니겠는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군 유럽사령관이 회원국이 제공하는 모든 부대를 작전통제 하도록 돼 있지만 회원국 사이에서 작전통제가 주권 침해라거나 이를 전환 또는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기되지 않는다. 호주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 2011년 북부 다윈에 미 해병을 상시 주둔시키고 미국의 전투기와 핵무기 탑재 함정이 호주 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주권국가로서 부끄럽다고 힐난하는 야당 지도자는 없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문 대표가) 말은 김무성처럼 하지만 행동은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처럼 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가 1980년대 운동권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듯한 당 안팎의 ‘반미 자주파’들에게서 벗어나 현실적인 안보 노선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이런 색깔 공세는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문 대표는 천안함 폭침 5주년을 하루 앞둔 그제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의한 폭침’을 명시적으로 적시했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해병대 장갑차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4·29 재·보궐선거, 멀리는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중도·보수로의 지지세 확장을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국민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그 배역을 충실히 소화하는 정치 지도자는 실제 정책에서도 국민의 생각에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소통자’로 불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