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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태극기 물결의 메시지

입력 | 2015-02-28 03:00:00


2013년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캐피틀 힐(Capitol Hill)로 불리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의장석 뒤에 활짝 펼쳐진 성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 국회 본회의장은 어떨까. 벽면 중앙에 대형 국회의원 배지가 당당히 버티고 있고 태극기는 의장석 옆 게양대에 꽂혀 있다.

▷“운요호에는 일본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했는가.” 1876년 1월 일본은 국기 문제를 내세워 우리에게 강화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때 우리 조정은 근대적 개념의 국기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1882년 8월 9일 수신사 박영효 등이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태극사괘 도안을 담은 기를 만들었다. 현재의 태극기는 1949년 10월 대한민국 국기로 공표됐다.

▷요즘 태극기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의 국기 하강식을 거론하며 애국심을 강조하자 좌파 진영에서 ‘구시대적 발상’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최근 3·1절을 앞두고 행정자치부가 태극기 게양 캠페인과 함께 법 개정에 나선다는 보도가 나왔다. “군사정부 시절로 회귀하자는 것이냐” “태극기 다는 운동까지 문제를 삼는가”로 목소리가 엇갈렸다. 태극기는 정권 아닌 나라 사랑의 상징물이다. 태극기 게양이나 국민의례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3·1운동 당시 익산역 집회를 이끌었던 문용기는 일본 경찰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오른팔을 칼로 베자 왼손에 옮겨 들고 전진했다. 일경이 왼손을 절단한 뒤에도 만세를 외치다 목숨을 잃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뜨거운 생명을 바쳐 지켜낸 태극기를 마음껏 내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나 후손들은 그 소중함을 점차 잊어가는 듯하다. 역사 문제로 이웃에서 도발할 때면 온 나라가 흥분하는 듯이 보이지만 국경일 아파트 단지엔 텅 빈 게양대가 더 많이 보인다. 3·1절에는 방방곡곡이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로 덮였으면 좋겠다. 순국선열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의미가 있고 일본에도 무언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