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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권순활]대박영화 ‘국제시장’의 사회경제적 효과

입력 | 2015-02-26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설 연휴 사흘째인 20일 영화계의 상식을 깨는 이변이 발생했다.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은 ‘국제시장’에 19만 명이 몰리면서 신작 영화들을 제치고 좌석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18일 시작된 설 연휴 닷새 동안 이 영화를 본 관객은 67만 명에 육박했다. 가족들이 함께 보면서 때로 웃고, 때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콘텐츠의 힘이 놀라운 뒷심을 가능케 했다.

작년 12월 17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의 기세가 무섭다. 24일까지 누적 관객이 1412만 명으로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순위 2위다.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괴물’ 같은 쟁쟁한 한국 영화에 이어 종전 2위였던 외화 ‘아바타’도 제쳤다. 윤제균 감독은 “1000만 돌파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아바타’까지 넘을 줄 누가 알았겠나”라고 했다. 누적 매출액은 1100억 원에 이른다.

관객 동원 1위인 ‘명량’(1761만 명)의 기록까지 ‘국제시장’이 깨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관객 수와 직접 매출액 외에 다른 부분까지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제시장’의 종합적 경제효과와 사회적 파장은 이미 ‘명량’을 넘어섰다.

영화의 주무대인 부산 국제시장은 이제 전 국민, 나아가 외국에도 알려진 명소가 됐다. 기차 버스 항공기로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해 지역경제에 적잖은 활기를 불어넣었다.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관심 덕분에 경남 남해의 파독(派獨)전시관과 ‘독일마을’에도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서병수 부산시장과 홍준표 경남지사는 영화 돌풍을 지역관광 활성화로 연결할 계획을 내놓았다. 해외수출 1호국인 미국에서는 연장상영이 이어지고 있고, 일본 등 아시아 각국과 유럽 남미로도 수출할 예정이다.

‘국제시장’은 전쟁의 폐허와 빈곤 속에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대한민국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나라로 바꿔놓은 ‘기적의 한국인 세대’를 재조명하는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역사를 직접 체험했거나 간접적으로라도 공감하는 중년 이상의 세대는 지금 우리가 거둔 성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시대’를 상상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교과서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생생한 역사를 배웠다.

주민등록인구 대비 누적관객 수인 관람률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자료를 발견했다. ‘국제시장’의 시도별 관람률은 부산 38%, 대구 37%, 광주와 대전 각각 32%, 서울 31%로 상위 1∼5위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세대와 지역, 남녀의 차이를 넘어 대다수 국민에게 어필한 ‘국민영화’라고 할 만하다. 하기야 영화의 주인공인 덕수와 영자의 이야기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바로 우리들의 ‘어제’가 아니겠는가.

‘국제시장’은 제작비 100억 원을 넘는 국내 영화 중에서 모든 스태프가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든 첫 사례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페이스북 글에서 영화에 대한 감동과 함께 계약서 작성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현대사가 시대배경인 영화는 반미(反美)-반정부 코드라야 흥행이 된다는 편견도 깨졌다. ‘국제시장 이전과 이후’ 한국 영화계의 제작환경과 풍토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덕수 부부보다 10년쯤 먼저 태어나 그들처럼 가족을 위해 신산스러운 삶을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내 부모님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영화관을 찾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지인도 적지 않다. 대박영화 ‘국제시장’은 우리 현대사 속에서 가족애와 가장(家長)의 의미를 실감나게 일깨운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