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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손택균]보이지 않는 횡단보도

입력 | 2014-12-22 03:00:00


손택균 문화부 기자

도로교통법에 ‘차량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날 때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현실은 법규와 다르다. 얼마 전 서울 세종대로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와 행인을 무시한 채 우회전하는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112에 신고했다. 흔한 일에 굳이 신고까지 한 건 그 차량이 경찰 오토바이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신고 후 조치에 대한 어떤 응답도 없었다. 보행 중에도 몸에 블랙박스를 붙여야 하나. 잠깐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 특허청이 주최한 디자인 보호대상 확대 검토 토론회에 참석했다. 8월 2일자 본보 기획기사 ‘표절천국, 창의성 사망진단서’가 계기가 됐다. 그래픽 심벌과 로고, 표면 문양과 장식을 디자인보호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자는 법률개정안이 주제였다.

변리사, 법대 교수, 디자인 전공 교수, 디자인회사 대표 등 업계 관련 전문가들은 대개 보호대상 확대에 부정적이었다. 한 변리사는 “이미지 사용에 대한 디자인보호법 저촉 여부를 별 의식 안 하던 업계 관행에 큰 혼란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회사 대표는 “수많은 업체가 곤란에 처할 것”이라며 “현장 의견에 귀기울여주기 바란다”고 강변했다.

혼란이 일었다. 디자인 보호대상 확대가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오판이었을까. ‘창작’이라는 한 단어의 의미가 처지에 따라 여러 갈래로 달리 해석되는 것을 확인했다.

토론회 말미 비전문 참가자로서 결례에 대한 양해를 구한 뒤 주제에서 벗어난 발언을 한 가지 했다. 이 법안이, 토론이, 현장 창작자에게 주어질 실질적 보탬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되느냐’는 질문만큼 철없이 여겨지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묻고 싶었다. 법이 부족해서 온갖 표절이 일상화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서울고등법원은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작품에 대한 국내 저작권 보유자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저작권자는 케나의 강원도 ‘솔섬’ 사진을 국내 작가가 유사하게 촬영했고 대한항공의 외주 광고제작사가 이를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피사체가 누구나 접근 가능한 자연물이며, 구도 설정의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횡단보도 일시정지 위반 지적에 대한 반박은 ‘차가 일일이 정지하면 교통 흐름에 방해된다’일 거다. 디자인 보호대상 확대 주장에 대한 반박은 ‘자잘한 디자인을 모두 보호하려 들면 관행적으로 이미지를 빌려 써 온 소규모 디자인 업체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다수 보행자와 원안 디자이너의 의견은 어떨까.

대한항공 광고 관련 소송에 대한 판결에는 법리적 정당성이 충분하다. “피사체 선정과 구도 설정 작업에는 창작성이 없거나 미약하고 현상 등 인화 과정에는 창작성이 있다”는 설명에 대해 세계 풍경사진 작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럼에도 궁금하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