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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펑크, 사과하고 환불해주면 끝?… 관객들의 잃어버린 저녁은 무엇으로 보상받나

입력 | 2014-11-25 03:00:00

소비자원 피해접수 2014년 들어 54건… 2013년보다 2.5배나 증가
티켓값 10%보태 환불하지만 소중한 시간 날린 허탈감 못메워
기획사 무리한 일정 ‘사고 잠복’… 클래식 공연 無보험 관행도 문제




테너 호세 카레라스 공연 전날부터 감기 때문에 도저히… 미안합니다

“어머니랑 세계 3대 테너라는 호세 카레라스 공연을 보려고 장당 33만 원을 지불하고 R석 티켓 2장을 예매했습니다. 부랴부랴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갔는데 공연 시작 30분이 지나서야 갑자기 죄송하다며 공연을 취소한다고 안내방송을 하네요. 슬픕니다, 하아….”(관객 D 씨가 네이버 음악 카페에 남긴 글)

공연 시장이 커지면서 공연 관람과 관련해 발생하는 관객들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2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공연 관람과 관련해 접수된 피해는 총 5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건)보다 약 2.5배 증가했다. 피해 유형별로 보면 공연이 아예 취소되거나 예약한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경우, 갑작스러운 출연자 교체 등의 계약 불이행 사례가 48%(26건)에 달했다. 소비자 개인 사정으로 예매한 공연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환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피해도 37%(20건)로 나타났다.

카레라스 공연 취소는 관객의 피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관객 2178명은 객석에서 안내방송만 믿고 기다리다 공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팝커뮤니케이션 등 공연 주최 측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유료 티켓 관객에 한해 티켓가의 110%를 보상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 티켓 발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유료 관객은 전체 관객 2178명 중 약 37%인 805명이었다. 가격이 44만 원인 VIP석을 예로 들면 티켓 원가에 10%를 보태 48만4000원을 환불해야 한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출연료 못받고 계속 무대에 설 수야… 양해해주세요

하지만 환불과 별개로 관객들은 예고 없는 공연 취소와 지각 공연 등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 카레라스 공연 취소 뒤 예매사이트인 인터파크 홈페이지에는 “시간 날리고 돈 날렸다” “전날부터 (카레라스가) 감기로 계속 상태 안 좋았다는데 미리 취소 공지도 안 하고 기다리게 한 게 말이 되느냐”는 내용의 글이 이어졌다. 서울 강남역 인근 자택에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박우영 씨(22)도 “기획사가 환불한다고 하지만 단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많은 관객이 허비한 시간과 소중하게 준비했지만 잃어버린 저녁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 건가”라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는 카레라스 공연 취소를 ‘예견된 인재(人災)’로 여기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기획하는 클래식 기획사 담당자는 “일흔을 내다보는 성악가의 리사이틀 공연을 이틀간 연달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스케줄이었다는 게 업계 평가”라며 “카레라스가 기획사 측에 공연 2시간 전 컨디션을 이유로 공연 취소 의사를 밝혔지만 기획사가 무리하게 대응해 관객 피해가 더 커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은 사고 발생 시 체계적인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공연 관계자는 “클래식 공연 기간이 주로 1, 2일이다 보니 장기 공연을 하는 뮤지컬과 달리 아티스트나 무대, 화재 보험 등을 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기획사는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무리하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란 법은 없다”고 꼬집었다.

관객의 권리를 무시한 공연 취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7월에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공연 직전 취소됐고, 5월 팝가수 폴 매카트니는 첫 내한공연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