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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서 비싸다… 900만원 귀하신 몸

입력 | 2014-10-24 03:00:00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 누비는 휠체어의 세계





개회식에 참가하려고 18일 인천 문학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정말 신이 나더라.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고, 친구들을 이렇게 많이 만난 것도 처음이었거든.

내 이름을 휠체어야. 국가대표 선수인 주인님을 모시고 24일 끝나는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 ‘꼬마 버스 타요’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어깨에 힘 좀 줘도 되겠지?

이번 대회가 너무 신나서 방방 뛰어다녔더니 어깨가 고장이 났어. 그래서 선수촌 정문(남문) 150m 안쪽에 자리 잡은 ‘보장구 수리센터’에 들러 도움을 받았지. 어디든 다친 곳이 있는 친구들은 이곳에 들르면 24시간 동안 무료로 손질을 받을 수 있거든. 이번 대회 참가 선수 5명 중 2명은 휠체어를 타야 하니까 이곳도 엄청 바빠. 듣자 하니 공군참모총장 출신인 김성일 대회조직위원장께서 근처를 지나시다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뭉클하더라. 바쁘면서도 훈훈한 그런 느낌”이라고 하셨다 하더라고.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내 친구들 몸 위에 앉아 보신 분들이 적지 않으실 거야. 그런데 여러분이 보통 병원에서 구경하는 휠체어하고 우리는 계급이 다르다는 말씀. 병원에 있는 녀석들은 비싸 봐야 30만 원이지만 선수들이 타는 몸은 500만 원이 넘어요. 여러분이 보통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전동 휠체어는 한 300만 원쯤? 그러니 그들하고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해요. 물론 나도 육상 선수들이 타는 800만∼900만 원짜리 휠체어 앞에서는 알아서 겸손 떠니 너무 잘난 체한다고 나무라지는 말아요. 특히 2000만 원이 넘는 핸드 사이클 앞에서는 바짝 엎드리니까.

“무리해 고장났어요” 무료수리센터 북적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가 한창인 23일 선수촌 내 휠체어 수리 센터. 휠체어를 24시간 무료로 수리해 주는 곳이다. 전체 선수단의 절반가량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병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 자원봉사단 제공

나라에서 보조금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휠체어를 사려면 온전히 주인님이 돈을 내야 해. 그렇다고 우리 주인님이 무척 부자라 나처럼 비싼 녀석을 선택하신 건 아니야. 장애 정도가 심하면 철로 만든 휠체어를 끌 수 있을 만큼 근력이 나오지 않거든. 그래서 아주 가벼운 첨단 항공기 소재로 휠체어를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거야. 단 나라마다 다른 휠체어 제작 수준을 감안해 고급 휠체어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게 국제적인 관례라는 사실도 상식적으로 알아두시길.

사실 비쌀 만하잖아. 우리는 보통 주인님보다 눈길을 먼저 받는 매력 덩어리니까. 한번 솔직하게 대답해 봐.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휠체어가 먼저 보이는지 사람이 먼저 보이는지. 오죽하면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내가 탄 휠체어보다 내가 발견한 과학적 업적으로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하셨을까. 거꾸로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들은 자기들 재산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값싼 휠체어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로 관심을 돌리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가 주인님들께 이동의 편리를 드리는 건 사실이지만 목적지는 주인님이 정하시는 거야. 그러니 약속하자. 다음부터는 우리보다 주인님을 먼저 보기로 말이야. 아, 주인님이 그만 가자고 하시네. 약속 잊으면 안 돼!

인천=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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