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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서 던진 꽁초에 아기 화상’ 사건 그후… 수사 난항 왜?

입력 | 2014-10-08 03:00:00

‘현장’ 포착 CCTV 없고 DNA 대조는 주민 비협조




이모 씨(29·여)는 8월 31일 정오 무렵 한 살배기 아들 한모 군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 조용한 벤치를 찾았다. 아기는 벤치 옆에 둔 유모차에서 곤히 낮잠을 청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기의 울음소리에 정적은 깨져버렸다. 이 씨가 황급히 유모차 속을 살펴보니 아기 오른팔에 빨갛게 부은 자국이 있었고, 기저귀 위에는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가 놓여 있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진 담배꽁초에 아기가 2도 화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범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이 가진 유일한 단서는 현장에서 수거된 담배꽁초에 남겨진 ‘남성의 유전자(DNA)’뿐이다.

수사 초기 서울송파경찰서는 담배꽁초에서 확보한 DNA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려 했다. 그러나 용의자가 범죄 전력자가 아니다 보니 데이터베이스에 남겨진 대조군과 일치하는 DNA가 없었다. 결국 경찰은 담배꽁초가 떨어진 아파트에서 범인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를 파악한 뒤 주민들의 DNA를 직접 채취해 대조하기로 했다.

담배꽁초가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한 폐쇄회로(CC)TV가 있다면 거주 위치를 특정하기 수월했겠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로 해당 아파트를 직접 촬영한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씨에 따르면 경찰은 아파트 4개 라인에서 실시한 투척 실험을 통해 범인이 벤치와 동일선상에 있는 라인의 5층 이상에 거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후 경찰은 해당 라인 거주자를 대상으로 구강세포 DNA 채취를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강제성이 없고, 동의를 얻은 뒤에야 채취가 가능하다 보니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은 수차례 설득을 거듭한 끝에 주민 19명의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으나 모두 범인의 DNA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 났다.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생활형 범죄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경우 무고한 주민을 용의자로 몰아갈 수 있다는 위험성과 생활형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심리로 인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력 사건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범죄 사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담배꽁초 사건의 경우에는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의 노력에도 범인의 정체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 ‘송파구 담배꽁초 투기 사건’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결혼 2년 만에 힘겹게 얻은 아이가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 씨는 여전히 범인 색출과 처벌을 원하고 있다. 이 씨는 “아이 팔에 생긴 상처는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아이는 지금도 상처 부위를 만지거나 빤히 쳐다보며 상처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추가적인 협조로 대규모 DNA 조사가 이뤄지거나 자수를 통해 범인이 잡히면 범인은 과실치상죄가 적용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