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고문 예비역 육군 대장
1990년대 이후 국내 정치안보 상황이 바뀌면서 향군은 또 다른 안보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종북세력으로부터의 국가정체성 방어가 그것이다. 반미운동에 대한 물리적 대응이 불가피했고, 왜곡된 한국 현대사교육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국가관과 안보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현장 안보교육을 실시해야 했다. 휴전 이후 한미동맹을 해체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연합사령관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반대운동에도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국가안보 제2의 보루’라는 향군의 한 회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10여 년 전 11월 11일, 나는 미국 워싱턴 한국용사 참전비를 찾았다. 마침 그날은 미국 향군의 날(Veterans Day)이었다.
오늘의 미국은 국민들의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지도국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예비전력인 향군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대통령의 관심이 오늘날의 미국과 같았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젊은 지도자가 통치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던 1960, 70년대보다 우리의 안보환경이 결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때는 북한만 상대하면 됐지만 지금은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내란 음모 등을 획책하는 내부의 적을 상대해야 하므로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향군 회원조차 ‘향군의 날’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인지 모른다. 6·25전쟁을 겪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전몰장병과 참전용사 등 재향군인에게 깊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국가안전보장회의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향군 자격도 없는 군 미필자인 나라, 많은 젊은이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는 나라다. 국가위기가 올 때 과연 누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것인가에 대해 정부를 포함한 범국민적인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에 따르면 국가와 자치단체는 향군의 사업에 필요한 보조금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 이 보조금으로 향군은 호국정신 함양과 각종 봉사활동 등 사회공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이마저도 정권 수호를 위한 정치활동이라고 운운하며 매도하는 세력 때문에 향군의 위상이 훼손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진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고문 예비역 육군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