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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단축근무? 말꺼내기 참 힘들어요”

입력 | 2014-10-02 03:00:00

‘하루 2시간 단축’ 시행 1주일
직접 신청 눈치보여 실효성 의문… “차라리 주4일 근무제가 효과”
비협조 기업 과태료 500만원뿐… “여성채용 되레 위축” 우려도




임신 근로자에 대한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지난달 25일부터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유산 및 조산 위험이 높은 임신 12주 이내와 36주 이후인 근로자가 하루 2시간씩 단축 근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야근과 연장근로 등 장시간 근로를 당연시하는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불허한 사업주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만 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 근로시간 단축은 그림의 떡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A 씨(31)는 현재 임신 9개월이지만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있다. 일단 업무량 자체가 많고, 공공기관 특유의 조직문화 특성상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시에 퇴근할 수 없어서다. A 씨는 본인이 근로시간 단축 대상인 것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회사 측이 이와 관련해 아무런 공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당 근로시간은 최대 68시간(정규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을 넘길 수 없다. 특히 15세 이상 18세 미만인 근로자와 임신 근로자는 연장근로가 예외 없이 금지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A 씨는 “평소 근무시간을 따져보면 임신 중에도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할 때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현행법이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임신을 하지 않거나 임신을 계획 중인 근로자도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다. 야근과 휴일근로를 당연시하고, 이에 대한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근로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하루 2시간씩 10시간인 1주 감소분을 아예 하루 쉬는 날로 돌려 주 4일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금융회사에 다니며 임신을 준비 중인 B 씨(30)는 “임신을 하더라도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차라리 임신 근로자에 대해 주 4일제를 의무화하는 것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올해 상반기 조합원 9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동료와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소속된 정규직 근로자가 많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조차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 기업은 난감, 처벌도 솜방망이

기업 입장에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는 물론이고 도덕적 비난까지 받아야 하고, 이를 허용하더라도 대체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업무량이 많은 부서에 보내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며 “여성 채용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신 근로자의 단축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도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을 허가하지 않은 사업주는 적발되면 최고 500만 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또 정부 점검에서 적발되지 않는 사업장은 근로자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해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수많은 사업장을 정부가 일일이 다 감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도 “일단 제도의 정착 여부를 지켜보면서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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