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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광표]與猶堂을 지은 뜻

입력 | 2014-10-01 03:00:00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사 검정교과서를 둘러싸고 이념편향과 부실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한 토론회가 9월 하순 열렸다. 세 번째의 공개 논의 자리였다. 국정화, 국정과 검정 혼용, 현행 검정제 유지 등의 안이 제시되었다. 토론장에선 어김없이 찬반론자들이 소란스럽게 세 대결을 펼쳤다.

논의 과정을 바라보는 교육계와 역사학계 등의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일차적인 이유는 교과서 국정화가 시대 흐름,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정화를 놓고 깊이 있는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국정화로 결론을 내놓고 토론회를 형식적으로 진행한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실제 진행 과정을 보면 이런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의 논란을 봤을 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교과서의 콘텐츠 문제가 핵심이었는데 정부는 발행 주체만 바꾸면 될 것처럼 생각했다. 내용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고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다.

국정화에 대한 찬반을 떠나 고민과 성찰의 부족이었다. 이후의 대응 과정도 졸속과 임기응변의 연속이었다.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여유당기(與猶堂記)’라는 글을 남겼다.

“나는 내 병을 스스로 잘 안다. 용기만 있지 지략이 없고 선(善)만 좋아하지 가릴 줄을 모르며 마음 가는 대로 행할 줄만 알았지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의 성품 탓이니 어찌 감히 운명을 말할 것인가. 노자에는 ‘머뭇머뭇하노라(與) 겨울 물을 건너듯, 조심조심하노라(猶), 사방을 두려워하듯’이라는 대목이 있다. 아아, 이 두 구절은 내 병에 약이 되지 않겠는가. 대개 겨울 시내를 건너려는 자는 추위가 뼈를 에이므로 그야말로 부득이하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다.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자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에 그야말로 부득이한 일일지라도 하지 않는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남양주로 낙향해 이 글을 썼다. 그러곤 자신의 집 당호를 ‘여유당’으로 정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승하는 세상의 일대 반전(反轉)이었다. 그는 세상과의 절연(絶緣)을 생각했다. 정조와 함께 개혁을 추진했던 다산으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조 없는 세상의 두려움. 한때 천주교를 믿었던 그에겐 신유박해(辛酉迫害)의 전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조심하고 머뭇거리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여유당. 이 당호를 두고 누군가는 두려움 혹은 소심함이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한 비겁함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유당의 주조는 겸손한 자기성찰이다. 정적들의 끊임없는 모함과 음모에 분노하기보다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한 것이다. 그 성찰은 서늘할 정도다. 그렇기에 18년 유배생활을 견디며 목민(牧民)의 철학을 숱한 저술로 남길 수 있었다.

삼국시대사든 조선사든 또 20세기 현대사든, 역사를 보는 시각은 늘 조심스럽고 성찰적이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나의 인식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믿음은 위험하다. 그런데도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우리의 논란을 보면, 성찰은 없고 확신과 주장만 있을 뿐이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이념 논란도 그랬고 지금의 국정화 논란도 비슷하다. 여유(與猶)가 없다. 좋은 교과서는 과연 무엇인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 것이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