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밥을 먹으려 할 때 가장 난감한 게 메뉴를 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남자친구 혹은 남편과도 다르지 않다.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하지 않고 변죽만 울린다. “아무거나 자기 먹고 싶은 것 먹자.” 그러나 이 말대로 했다가는 뒤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 왜 이러는 것일까?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먹는 것에 훨씬 신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끼를 먹어도 여러 가지를 동시에 생각한다. 맛있고 다이어트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며 ‘남다른 경험’까지 할 수 있는 식사를 원한다. 맛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청결함,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마는 대다수 남성과는 만족의 포인트가 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남성의 경우, 순간 본 것으로 판단하거나 결정할 때가 많다고 분석한다. 반면에 여성은 하나씩 조건을 비교해가며 결정하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대신 더 안정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낯선 남성에게는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끄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메뉴 정하기의 난관은 여성 사회의 ‘눈치전’을 반영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섣불리 튀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자기 취향을 공공연히 주장했다가는 ‘우월감’과 ‘비호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다.
자기가 좋아하는 맛집을 다른 여성들에게 추천한다는 것은 일종의 수준 시험이며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도 통한다. 자칫 ‘독박’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식당에 앉자마자 까탈스러운 그들로부터 한마디 듣는다. “얼마나 맛있나 보자.” 예상보다 나을 경우에는 “이런 데를 어떻게 알아?”라며 꼬치꼬치 묻는다. “일본어로 쓰여 있네. 어떻게 읽어?” 뼈가 있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못마땅한 이가 많을 경우 비호감으로 몰려 한동안 뒷담화에 오르기도 한다. 이런 기미는 다양하게 감지된다. “여기보다 좋은 데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거나 밑반찬만 맛있다고 자꾸 주문을 한다. 음식을 휘저어놓고는 고스란히 남긴다. 반감의 표시다.
여성들이 메뉴에 신중을 거듭하는 데는 이 같은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니까 왜 속 시원하게 정하지 못하느냐고 몰아세울 일만은 아니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