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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문명]윤 일병 죽음, 미군에게 물어보니

입력 | 2014-08-07 03:00:00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을 보며 미군은 어떤지 궁금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주한미군 대령에게 물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20여 년 군 생활을 한 그는 “미군은 모병제이기 때문에 사정이 좀 다르다”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너무 놀랍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군에는 사병부터 장군까지 군 생활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다. 불편사항, 인권침해, 불공정한 처우를 당했을 경우 수시로 털어놓고 해결할 수 있다. 상담자나 고발자는 철저히 보호되고 범죄자는 엄벌에 처해진다. 헌병(MP)이나 군범죄수사당국(CID)은 고도의 수사능력을 갖고 있다. 한국군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이번 사건은 군을 범죄 집단으로 증오하는 감정적 대응보다는 차분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본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한국군 내부 문제를 미군에게 물어볼 일은 아니리라. 군 현안들에 대해 종종 자문하는 전직 장성들에게 물었다. 군 생활 대부분을 기무사령부에서 보낸 퇴역 장군의 말이다. “어제 현역 장군 4명과 식사를 했는데 우연히도 모두 아들이나 조카가 입대해 있었다. 한 장군의 말이 조카가 고참으로부터 벌집 고문을 당했다더라. 벌집 있는 나무에 애를 묶어놓고 벌집을 건드리는 벌을 내린 것이다. 벌에 쏘이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적 쇼크가 너무 컸다고 한다. 장군 가족들도 구타나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말을 전해 들으며 공포상태로 내무반에서 한 달을 보냈을 윤 일병 모습이 떠올라 새삼 소름이 끼쳤다. 한 육군 퇴역 장성의 말은 이렇다. “군은 지금 중병이 들었다. 지휘관들은 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사병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은 궁극적으로 군 최고지휘부 책임이다. 별 따려고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는 ‘정치군인’들이 군을 주도한 지 오래다. 이번 일을 은폐하려 시도했던 군인들은 징계감이 아니라 군법회의감이다.”

헌병 출신 예비역 장성도 군 인사문제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했다. “야전 경험이 많은 능력자 위주로 인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인맥에 따라 자기사람 심기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내부 기강이 많이 무너졌다. 병사들을 잘 살피는 사람들이 중용되는 게 아니라 윗분들 잘 모시는 사람이 출세하니 병영 관리가 부실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전투력의 중추라 할 부사관들 문제도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병사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동고동락해야 할 사람들이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이 직장에서 시간 때우듯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내무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말은 북한을 향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지금 군이 전쟁할 수 있는 조직인지 의문스럽다” “명예심도 능력도 부족한 지휘관 밑에서 어떻게 병사들이 자존감을 갖고 일하겠는가. 그나마 전투부대는 덜한데 의무병이나 행정병들은 전우애도 덜하고 ‘개인플레이’가 많다. 윤 일병도 의무병이었다. 이렇게 고립되어 있는 부대들에 대해서는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대통령이 일벌백계를 말하고 책임자 문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번 일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중병 걸린 환자를 치료할 생각을 해야지 건강관리 잘못했다고 벌만 준다 해서 해결될 일인가. 군을 존중하고 내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대통령과 정치권이 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일에 대한 처방은 종합적 장기적이어야 한다는 미군 대령의 말이 오래 남았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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