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역사와 문화가 다른 한국군 내부 문제를 미군에게 물어볼 일은 아니리라. 군 현안들에 대해 종종 자문하는 전직 장성들에게 물었다. 군 생활 대부분을 기무사령부에서 보낸 퇴역 장군의 말이다. “어제 현역 장군 4명과 식사를 했는데 우연히도 모두 아들이나 조카가 입대해 있었다. 한 장군의 말이 조카가 고참으로부터 벌집 고문을 당했다더라. 벌집 있는 나무에 애를 묶어놓고 벌집을 건드리는 벌을 내린 것이다. 벌에 쏘이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적 쇼크가 너무 컸다고 한다. 장군 가족들도 구타나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말을 전해 들으며 공포상태로 내무반에서 한 달을 보냈을 윤 일병 모습이 떠올라 새삼 소름이 끼쳤다. 한 육군 퇴역 장성의 말은 이렇다. “군은 지금 중병이 들었다. 지휘관들은 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사병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은 궁극적으로 군 최고지휘부 책임이다. 별 따려고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는 ‘정치군인’들이 군을 주도한 지 오래다. 이번 일을 은폐하려 시도했던 군인들은 징계감이 아니라 군법회의감이다.”
전투력의 중추라 할 부사관들 문제도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병사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동고동락해야 할 사람들이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이 직장에서 시간 때우듯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내무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말은 북한을 향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지금 군이 전쟁할 수 있는 조직인지 의문스럽다” “명예심도 능력도 부족한 지휘관 밑에서 어떻게 병사들이 자존감을 갖고 일하겠는가. 그나마 전투부대는 덜한데 의무병이나 행정병들은 전우애도 덜하고 ‘개인플레이’가 많다. 윤 일병도 의무병이었다. 이렇게 고립되어 있는 부대들에 대해서는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대통령이 일벌백계를 말하고 책임자 문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번 일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중병 걸린 환자를 치료할 생각을 해야지 건강관리 잘못했다고 벌만 준다 해서 해결될 일인가. 군을 존중하고 내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대통령과 정치권이 한 일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일에 대한 처방은 종합적 장기적이어야 한다는 미군 대령의 말이 오래 남았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