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시대 강제수용소 ‘굴라크’ 생존자 1600만명의 고통 추적 ◇돌아온 희생자들/스티븐 F 코언 지음·김윤경 옮김/276쪽·1만5000원·글항아리
1932년 옛 소련 북서부 발트해운하 인근에 있던 굴라크에서 죄수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부모들이 굴라크로 끌려가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들.
스탈린이 처형한 니콜라이 부하린의 동생 블라디미르 부하린은 굴라크로 끌려가 10여 년간 고초를 겪었다. 잡혀가기 전 모습(왼쪽 사진)과 출소한 뒤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다.
1990년 설문조사에서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본 러시아인은 10% 미만이었지만 불과 15년이 지난 2005년에는 50% 이상으로 치솟았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스탈린 시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이런 현상과 맞물려 스탈린의 최대 치부인 ‘굴라크(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들이 풀려난 뒤 어떤 삶을 살았으며 소련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한다. 미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제3자로서 당시 비극을 당사자들의 인터뷰와 서면 조사 등을 통해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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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의해 살해된 유대인과 굴라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수다. 스탈린이 죽은 1953년에만 550만 명이 굴라크와 감옥 등에 갇혀 있었다. 굴라크가 20여 년이나 지속된 데다 위치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아직도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지 못한다. 나치의 만행 못지않게 최악의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이 자행됐지만 굴라크는 아우슈비츠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사 청산’의 과정은 지난했다. 굴라크 죄수들의 석방은 스탈린이 숨지고 3년이 지나서도 아주 더디게 진행됐다. 1954년부터 흐루쇼프가 실각한 1964년까지 불과 70만∼80만 명의 굴라크 피해자만 복권됐다. 나머지는 글라스노스트(개방) 등을 들고 나온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까지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생존자는 물론이고 그 자녀들까지 취업과 여행 제한 등 각종 사회적 불이익을 겪었다.
저자는 “스탈린 사후 많은 생존자가 상황이 더 악화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살아남은 ‘인민의 적’은 결국 모두 처형될 것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귀환자와 자녀들은 과거를 숨기거나 가명을 쓰는 이중생활을 했다. 굴라크에서 살아남은 예브게니야 긴즈부르크 같은 유명 작가도 발각될 것을 우려해 신랄한 내용이 담긴 회고록 초안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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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