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맨해튼 관문에 위안부 기림비 건립 이끈 김자혜 유니언시티 시립교향악단 감독
미국 뉴욕 맨해튼으로 향하는 관문에 세워지는 ‘일본군 강제동원 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이끌어낸 김자혜 씨(위쪽 사진 오른쪽)와 13일 타계한 세계적 지휘자 겸 작곡가 로린 마젤의 다정한 모습. 기림비(아래 사진)에는 일본군이 한국 등 각국 여성들을 ‘성적 노예’로 강제 동원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김자혜 씨 제공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미국 직장인이나 전 세계에서 뉴욕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링컨 터널로 들어설 때마다 이 기림비를 보게 되는 셈이다. 이 기림비는 또 한인사회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세웠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거듭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인유권자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14일 “이 기림비는 뉴욕·뉴저지 지역에서는 4번째, 전 미국에서는 7번째로 건립되는 것이지만 미국 지자체인 유니언시티의 이름으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보가 입수한 기림비 동판의 제작자는 ‘시장 브라이언 스택과 행정위원회, 그리고 유니언시티의 시민들’로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유니언시티는 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려 했을까. 그 뒤에는 ‘가장 편안(comfort)하지 않았던 위안부(comfort woman)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한 한국 여성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김자혜 허드슨 문화재단 대표 겸 유니언시티 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35)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재단은 양로원이나 병원을 찾아다니며 무료 공연을 하는 비영리예술 활동을 주로 해왔다. 김 대표는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이어 한국을 방문해 ‘나눔의 집’에서 그들과 재회하면서 기림비 건립의 필요성을 확고하게 느꼈다고 한다.
“할머니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니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많이 알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때부터 ‘위안부’의 의미도 모르는 미국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김 대표의 위안부 문제 알리기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우선 유니언시티에 기림비 건립을 건의하고 그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김 대표는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되는 세계 여성의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시 관계자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연극 ‘컴포트’를 기획한 의도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컴포트는 미국에서 영어로, 미국 배우로만 구성된 최초의 브로드웨이 연극이란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위안부의 뜻도 모르던 미국 배우들이 지금은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열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25일 유니언시티 뮤지엄에서 연극 ‘컴포트’ 상연을 겸한 기림비 제작 관련 모금 행사가 열린다. 기림비 행사를 위해 방미하는 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순 강일출 할머니는 다음 달 4일 제막식에 참가한 뒤 저녁에는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연극 ‘컴포트’를 관람한다. 두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직접 피해 사례를 증언할 예정이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