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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안되는 ‘반쪽’… 金일가 찬양앱 - IT용어사전 눈길

입력 | 2014-06-17 03:00:00

[北 스마트폰 ‘아리랑’]




동아일보가 국내 언론 최초로 입수한 ‘아리랑 손전화기’는 북한이 자체 상표를 달고 처음 생산한 ‘화면접촉수감식(畵面接觸手感式·터치 방식을 의미하는 북한어)’ 휴대전화다.

겉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스마트폰이지만 분석 결과 많은 기능이 제외된 ‘반쪽 스마트폰’에 불과했다. 통화와 문자 기능만 있을 뿐 스마트폰의 핵심 기능인 무선인터넷이 안 되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는 장터도 없다.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품 대부분은 중국 대만 기업이 만들었다. 일부 한국 미국 기업이 만든 부품도 있다. 국내 스마트폰 전문가들과 함께 ‘아리랑 손전화기’를 분석했다.

○ 3년 전 운영체제(OS)…수준 낮은 앱

사용에 앞서 살펴본 설명서에는 다양한 용어들이 북한식으로 쓰여 있다. 일반적으로 유심(USIM)카드라 부르는 범용가입자식별모듈은 ‘씸카드’라고 썼다. 또 동영상은 ‘비데오’, 문자메시지는 ‘통보문’, 이어폰은 ‘귀수화기’, 메모리는 ‘기억기’, 서비스는 ‘봉사’로 표현돼 있다. 품질보증 통과를 의미하는 ‘QA(Quality Assurance) PASS’만은 유독 붉게 영어로 쓰인 점이 눈에 띈다.

아리랑 손전화기에 설치된 앱은 총 45개. 보통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구글의 유튜브나 G메일 앱은 없다. ‘철천지원수’라고 부르는 미국 회사의 앱일뿐더러 구글로부터 일종의 품질관리 체계인 ‘구글 인증’을 받지 않으면 깔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OS는 구글이 2011년 내놓은 안드로이드 OS ‘아이스크림샌드위치’를 그대로 쓰고 있다. 한 전문가는 “안드로이드 OS의 기본 소스로만 동작하도록 만든 수준”으로 분석했다.

첫 번째 화면에는 다양한 ‘유희(게임)’ 앱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고무총 쏘기’ 게임은 핀란드 로비오사의 유명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를 이름만 바꿔 놓은 것이다. ‘방어전’ ‘땅크(탱크)전’ ‘비행기 유희’ 등 전쟁 관련 게임들이 유독 많다. 대부분 초기 안드로이드용 게임의 해적판이다.

게임 외 앱들은 주로 정보 콘텐츠를 담은 것이다. 공산주의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찬양을 담은 작품을 모아놓은 ‘문학작품집’, 다양한 레시피를 담은 ‘조선료리’, 정보기술(IT) 용어의 북한어 번역을 알려주는 ‘정보기술용어사전’ 등이 있다.

이런 앱 대부분은 ‘주체 102년(2013년)’에 ‘조선콤퓨터중심’에서 만들었고 저작권 관련 북한 법률인 ‘콤퓨터쏘프트웨어보호법’에 따라 보호된다고 명시돼 있다. PC용으로 개발한 콘텐츠를 앱 버전으로 바꾼 것들로 추정된다.

컴퓨터에 있는 음악이나 동영상 파일을 이 스마트폰에 옮겨 듣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에 mp3 음악 파일이나 동영상을 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스마트폰에는 ‘모란봉악단’ ‘보천보전자악단’ 등의 노래 3곡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장터는 없다. 구글플레이 대신 ‘봉사 장터’라는 앱 장터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지만 본보가 입수한 휴대전화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터넷 브라우저는 ‘웨브열람기’라는 명칭으로 설치돼 있지만 데이터 통신이 불가능하니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 대부분 부품은 중국 및 대만산…메모리는 SK하이닉스 제품

화면은 4.3인치의 비교적 작은 크기. 화질은 중저가 스마트폰 수준(해상도 960×540)이다. 조금만 사용해도 발열이 심했다. 설명서와 달리 1시간 정도 기기를 사용하면 전원이 80% 이상 줄어들 정도로 배터리 성능이 부실했다. 원산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산 제품으로 보인다. 무게는 128g으로 같은 크기인 삼성전자 갤럭시S(116g)보다 조금 무겁다.

본체를 뜯어 부품을 살펴보니 중앙처리장치(CPU), 전력관리반도체(PMIC), 통신모듈, 와이파이, 블루투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대부분 부품이 대만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MediaTek·聯發科技)이 생산한 제품으로 확인됐다. 다만 메모리 부품은 국내 기업 SK하이닉스의 것을 사용했다. 스마트폰 메모리는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껍데기 역시 북한 자체 제작이라는 분석과 수입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북한 자체 설계가 아닌 기존 제품용으로 설계돼 생산된 ‘하드웨어 패키지’를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전자 제품 제조 및 설계 수준을 고려했을 때 독자적인 스마트폰 제품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닫힌 사회’ 북한이 투영된 스마트폰

전문가들은 “하드웨어 수준은 2010∼2012년에 생산된 저가형 스마트폰 모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2010년 삼성전자가 내놓은 ‘웨이브’, 같은 해 팬택이 출시한 ‘시리우스’와 유사한 급이라는 소리다.

소프트웨어 수준은 “아직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수정하거나 갱신하는 등의 작업을 할 기술력을 갖지 못한 듯하다”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시장 경쟁이 없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을 만들기는 했지만 자체 기술력은 거의 없고 앱 장터, 와이파이 기능 등을 탑재하지 않아 스마트폰의 장점인 ‘확장성’이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폐쇄적이고 낙후된 북한의 특성이 그대로 이 스마트폰에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2008년 12월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과 손잡고 3세대(3G)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2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보급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태호 taeho@donga.com·정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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