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요양병원 참사 이후] 출혈 경쟁에 안전투자 뒷전
○ 환자에게 용돈까지 주며 유치
29일 본보 기자가 경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를 문의하자 “한 달에 50만 원으로 맞춰줄 수 있다. 거의 진료비를 안 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 측은 이 50만 원에 하루 세끼 식비 5400원과 공동간병비 1만5000원, 입원료와 약값까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 병원의 실제 식비와 간병비만 계산해도 한 달에 61만2000원이 든다. 병원 관계자는 “그러니까 사실상 돈을 안 내는 것”이라며 “자기 부담이 매우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병원 입원환자들은 일당 정액제로 입원 진료비가 책정된다. 환자 상태에 따라 하루당 1만3600∼5만6100원. 여기서 환자가 20%를 부담하고, 나머지 80%는 건보재정에서 지급된다. 병원은 건보재정에서 환자 1인당 입원료만 하루 1만880∼4만4880원, 한 달에 30만∼130만 원대의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입원환자 수를 늘릴수록 이윤을 남기게 되는 구조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김승수(가명) 씨는 “어떤 요양병원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진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금도 받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받았다고 해둔다”며 “심지어 건강보험재정에서 받은 진료수가를 환자에게 용돈으로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병원이 차량 운행을 하면서 환자를 태우고 와 진료를 한 뒤 다시 집으로 보내는 일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의료법상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한 ‘환자 유인행위’는 불법이다.
○ 병원 환경 개선도 어려워
요양병원 수가 늘면서 환자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저렴한 가격이나 의료서비스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기에 환자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안전 강화는 돈은 많이 들어도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에 환자 유인에 별 도움이 못 된다. 요양병원에서 안전이 뒷전으로 밀렸던 이유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요양병원 안전을 위해 시설기준을 강화했다. 병원들은 층간 경사로와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휠체어와 병상이 이동할 수 있게 벽 간 폭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 병원에는 시행이 1년 유예됐기에 내년 4월부터 모든 요양병원에 적용된다.
하지만 기존의 요양병원들이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킬지는 미지수다. 안전에 투자하는 것도 인색하지만, 설립 당시부터 안전규정을 지킬 수 없는 건물에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기 지역의 A요양병원은 아파트단지 인근에 있는 빌딩 내 9층을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한 층만 임차해서 요양병원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침대용 엘리베이터는 애초부터 설치돼 있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경사로도 없다.
경기 지역 한 요양병원의 원장은 “건물주가 침대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주지 않는 이상, 내가 자체적으로 공사를 하긴 어렵다”며 “비상구 경사로를 만드는 것도 다른 임대주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법으로 의무화되지 않은 스프링클러의 경우 비용은 훨씬 많이 든다. 층당 330m²(약 100평)인 5층짜리 건물을 기준으로 최소 1억2000만 원이 들어간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병원들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고 있다.
현행 의료법상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정부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곳에는 1년 이내의 운영정지나 허가 취소, 폐쇄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요양병원들이 안전기준을 확실하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규정을 어기면 시설 인허가를 해주지 말고, 기존의 건물들은 안전규정에 맞지 않으면 시설을 옮기도록 하든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