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세월호 사태는 역대 그 어떤 참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악질 참사다. 1970년 326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1973년 62명의 사망자를 낸 한성호,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도 심한 과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세월호와 달리 거센 바람과 파도라는 불운이 겹쳤다. 이들의 과적과 정원 초과는 적어도 일상사, 다반사는 아니었다. 남영호와 한성호는 폭풍주의보로 며칠간 묶였던 화물과 승객이 몰렸다. 서해훼리호도 하루 1회만 운항하는데, 마침 낚시 철에다 일요일이라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몰렸다.
그런데 세월호의 경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상사였다. 회사, 승무원, 감독 당국의 파렴치한 몇 명이 몰래 작당해서 저지른 부정비리가 아니었다. 독점노선 허용과 요금 규제를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연안해운 시장의 구조적 문제였다. 이는 불법적 수익 증대(증축-과적-평형수 감량), 극단적인 비용 절감, 사고 시 몸빵 해 줄 바지선장 고용, 혹시 있을지 모르는 경쟁자 시장 진입 봉쇄를 위한 적자 장부 등 온갖 반칙을 부르기 마련이다.
요컨대 형편없는 직무능력과 직업윤리는 계약직 선원과 철밥통(?) 실세 선원과 해경을 가리지 않았다. 회사도, 인양업체도, 감독기관도, 고위공직자도, 정권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인사가 만사가 맞다면, 인사 시스템이야말로 참사였다.
게다가 과거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안전점검 서류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함량 미달 인사, 쓸데없는 보고, 허위 보고, 과잉 의전 관행 등 뿌리 깊은 관료주의적 악습도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비극과 악덕을 우리 국민들은 영상으로 지켜봤다. 충격과 분노의 단위가 다를 수밖에!
지금 우리 사회는 원흉이든 마녀든 찾아내서 “저놈 죽여라!” 외치고 싶은 분노와 증오가 들끓고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념 과잉의 정치인과 지식인도 넘친다. 규제 완화와 비정규직을 마녀로 규정하는 그 이념은 복지병을 앓았던 1970, 80년대 유럽과 규제에 질식사하기 직전의 관피아 한국의 차이를 모른다. 게다가 지금은 모든 계기를 당선(승리)의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선거전이 한창이다. 낡은 이념과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성찰과 반성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갈 수가 있다. 전문가 특유의 편협성에 의해 지엽말단적인 것이 과도하게 부각될 수도 있다.
뼈아픈 역사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시원치 않아 뵈는 우리 사회는 이번만은 제대로 실사구시해서, 제대로 바꿔야 한다. 성찰, 반성의 수준에 미래세대와 민족의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