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부형권]‘어머니 같은 나라’는 어디에…

입력 | 2014-04-22 03:00:00


부형권 정치부 차장

어머니.

어젯밤도 악몽을 꿨습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 방을 둘러봤습니다. 그냥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냥 미안했습니다. 그러고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든 그 모든 것에 허탈하게 화가 났습니다.

초등학생 땐 공산당이 집에 쳐들어오는 꿈을 많이 꿨습니다. 투철한 반공교육이 소년을 밤새 울게 했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공부한 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꿈도 많았습니다. 그 악몽에서 깨워준 건 늘 어머니의 따뜻한 품,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어머니.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 더욱 느낍니다. 어떻게 어머니로 사셨습니까. 양손 가득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서도 절대 택시를 타지 못하셨습니다. ‘그 택시비 아끼면 5남매에게 줄 빵 하나, 사과 하나 더 살 수 있다’고 하시면서…. 먹고살 만해져도 그 본능은 어머니를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늙고 낡은 그 육신으로도 여전히 몸보다 마음 편한 길을 택하십니다. 기억나십니까. 어느 새벽 술 취한 동네 불량배들이 집 유리창을 깨고 도망갔을 때 어머니는 끝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붙잡아 파출소에 넘겼습니다. 우리 집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어머니는 초인(超人)이었습니다. 더 많이 배운 자식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용기와 지혜를 어머니에게서 봅니다. 어머니의 회초리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았습니다. 제 할 공부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국가와 사회에 도움 되는 바른 사람이 되라는 ‘사랑의 매’였습니다.

아버지들이 일군 나라를 꿋꿋이 지켜온 이 땅의 어머니, 그런 ‘대한민국 어머니’의 마음과 정신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입니다.

총탄에 어머니를 일찍 여읜 대통령도 ‘어머니 같은 나라’를 꿈꿔왔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국민 여러분이 부모 형제가 돼 줘서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고 싶습니다. 가난 속에서 10명의 자녀를 맡아도 어떤 수를 써서도 굶기지 않고 학교도 다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해나겠습니다.”(2004년 3월 방송 연설)

“저는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2013년 2월 취임사)

그러나 온 나라를 오열하게 만든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그런 어머니가 안 보입니다. 아들딸의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더 잘 먹여 보내는 게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남의 자식 귀한 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아들딸이 탄 그 큰 배의 선장과 주요 승무원에게 그런 어머니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마흔 넘은 아들에게도 “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칠순 노모의 그 노심초사가 일말이라도 있었다면, 허망한 상상이지만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우리 아들딸들을 이끌고 밖으로만 나왔다면, 너무 놀라 위기 대응 매뉴얼이 하나도 안 떠오르더라도 어머니 본능이 어딘가 누구에게서 조금만 더 작동했다면.

사고 이후에도 어머니가 안 보입니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그 물을 간절히 바라보는 뭍에서도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고 있지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호통만 보일 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어머니 같은 정부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머니. 지금 가장 절실한 건 선진국의 매뉴얼도, 선진국의 시민의식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적을 일궈낸 어머니의 용기와 지혜입니다.

어머니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대통령이 다짐해온 그 어머니 같은 나라를 찾습니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