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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망울들 위해” “선생님에게 체벌 받은적 있어요”

입력 | 2014-04-21 03:00:00

광주시민 100명의 자기고백 담은 다큐멘터리 연극 ‘100%광주’




다큐멘터리 연극 ‘100%광주’에 출연한 시민들이 누가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광주의 인구학적 특성을 반영하는 100명의 시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통계에 나오는 숫자들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초등학교 1학년 때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페인트칠을 했습니다.”(84세 여성)

“모자를 좋아합니다. 갖고 있는 모자만 30개가 넘습니다.”(70대 남성)

광주 시민 100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큐멘터리 연극 ‘100%광주’. 이 다큐 연극이 무대에 오른 19일 광주 북구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는 광주의 인구학적 특성을 대표하는 시민 100명의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광주 전체 인구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16%여서 30대는 16명이 됐다. 여성은 51명, 남성은 49명이었다. 외국인 비율은 1%여서 외국인 1명도 포함됐다.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 창작 그룹 ‘리미니 프로토콜’의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 씨(왼쪽부터).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100%광주’는 독일인 3명으로 구성된 다큐 연극 창작 그룹 ‘리미니 프로토콜’이 만든 작품이다. 다큐 연극은 일반인을 무대에 올려 그들의 실제 삶을 보여준다. ‘리미니 프로토콜’은 2008년 ‘100%베를린’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런던 멜버른 밴쿠버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초청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광주는 18번째로, 한국 도시 가운데는 처음이다. 내년에 개관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공연에서는 세월호 참사도 언급됐다. 한 중년 여성은 개나리꽃을 들고 나와 “채 피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바친다”고 애도했다. 시민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한 뒤 공연을 이어갔다.

여러 질문에 대해 ‘예’ ‘아니요’가 표시된 구역으로 가는 순서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이웃의 이름을 안다’에 ‘예’ 구역으로 간 사람은 20여 명뿐이었다. ‘통일을 위해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겠다’에 ‘예’라고 답한 사람은 10여 명이었다. 이웃이 누군지 모른 채 살아가고 통일에 부담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5·18을 목격했다’는 질문에는 20여 명이 ‘예’ 구역으로 갔다.

연출을 맡은 헬가르트 하우크 씨(45)는 “‘전쟁을 경험할 수 있다’는 질문에 무려 80%가,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질문에 90%가 ‘예’라고 답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시민들에게서 “다시 태어나면 ○○을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은 것도 의외였다. 공동 연출인 슈테판 카에기 씨(42)는 “한국이 성별이나 역할에 따른 강박관념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연출가들은 또 ‘내가 사는 도시를 위해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질문에 단 한 명만이 ‘예’라고 답한 것도 특이했다고 말했다. 멜버른에서는 ‘그렇다’는 비율이 40%에 달했다. 이는 광주시민들이 군국주의를 경계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하우크 씨는 “많은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며 한국인이 매우 적극적인 데다 스마트폰을 이렇게 많이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또 “연극은 인위적인 상황인데 이를 깨뜨려서 실제 현실이 무대에서 얼마나 구현되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26, 27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5만 원. 062-410-3633

광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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