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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두영]달에 있는 부동산에 관한 연구

입력 | 2014-04-02 03:00:00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주인 없는 땅에 버려진 자동차를 구입한 뒤 자동차를 근거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자동차는 오래전에 고장 난 고물인 데다 지구가 아닌 달에 버려져 있는데….

1972년 미국의 마지막 유인탐사선인 아폴로 17호가 돌아온 이듬해 옛 소련은 루나 21호를 발사하여 월면자동차 루노호트 2호를 ‘르모니에 크레이터’에 착륙시켰다. 루노호트는 넉 달간 달을 누비고 다니며 사진 8만 장을 전송한 뒤 냉각기 고장으로 작동을 멈추고 교신도 끊어졌다.

실종된 지 20년이 지난 1993년 루노호트의 주인인 러시아의 라보치킨 협회가 재정난에 몰려 루나 21호와 함께 실종된 ‘고물 자동차’를 미국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 내놨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져볼 수도 없는 ‘우주 고물’을 사들인 낙찰자는 ‘세계 3대 게임개발자’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개리엇이다. 낙찰가는 6만8500달러(7500만 원 상당).

그는 2008년 3000만 달러(330억 원 상당)를 들여 12일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우주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엔씨소프트를 퇴직한 뒤 주식을 팔아 12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실현하고 소송을 통해 360억 원 상당의 배상금까지 챙기면서, 그는 한국에서 ‘우주 먹튀’라는 악명으로 유명해졌다. 엔씨소프트가 우주여행을 시켜준 꼴이기 때문이다.

일은 악동이 점점 더 기고만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2010년 미국 웨스턴온타리오대의 한 교수가 바큇자국을 추적한 끝에 ‘고물 자동차’를 찾아냈다. 루노호트 2호가 실종 37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악동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고물 자동차’가 달에서 돌아다닌 반경37km 지역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했다. 신대륙에서 말로 달린 만큼 땅을 차지하는 카우보이의 논리다. 그렇다면 그는 달에 자신의 땅과 자동차까지 갖고 있는 셈이다.

달에 있다는 그의 부동산을 과연 인정할 수 있을까? 유엔이 1979년 체결한 ‘달 조약’은 달에 대해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어떤 소유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20개가 넘는 국가가 비준했지만 정작 미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미국인인 개리엇이 이 조약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 유엔이 1967년 제정한 ‘우주 조약’은 어떤 국가도 우주 공간에 주권을 가질 수 없으며 개발 이익을 독점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국가가 서명했다. 그러나 악동은 자신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기 때문에 우주 조약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달에 있는 ‘고물 자동차’는 그의 자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라보치킨 협회에서 받은 영수증이나 소더비의 경매증서가 그의 자산이라고 보증할 수 있는가? 우주 개척 초기에 사용한 뒤 우주에 버린 ‘우주 고물’이나 ‘우주 쓰레기’는 특정 개인이나 국가의 소유라기보다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른바 우주관광학 차원에서 보면 훌륭한 관광자원이고, 우주고고학 차원에서 보면 역사적인 문화유산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주는 인간과 떨어진 ‘저 먼 곳’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같은 영역이 서로 얽히는 인간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우주사회학을 전공한 안형준 씨(과학기술사 박사과정)는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이 되려면 우주기술뿐 아니라 우주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주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문화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과학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듯이.

다시 4월 과학의 달이다. 과학문화는 어디 갔을까?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