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타본 차]임권택 감독과 ‘K9’
이번에 영화 촬영을 하며 기아자동차의 K9를 처음 타 봤다. 화려한 것보다는 담백한 선을 좋아하는 취향인데 K9의 첫인상은 퍽 만족스러웠다. 거칠 것 없이 쭉쭉 뻗은 차의 옆면은 소박하지만 중후한 중년 신사의 모습과 언뜻 겹쳤다. 번쩍이는 안광을 내뿜으며 웅장한 느낌을 내비치는 앞모습은 영락없이 호랑이의 형상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웅장한 매력을 내뿜는 겉모습은 누가 타더라도 타는 사람의 격을 높여줄 것만 같았다.
차에 앉으니 조용한 기계음과 함께 운전석이 움직이며 몸을 핸들로 이끌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만난 양 들뜬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가속페달을 밟으니 차는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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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느긋한 성격이지만 소싯적엔 화끈한 남자로 통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굉음을 내며 튕겨나갈 줄 알았던 차가 의외로 조용하다. 하지만 속도계는 순식간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묵직한 고속의 느낌이 참 안정적이다. 마치 정숙한 잠수함 같다고 할까.
탁 트인 도로를 달리고 있으려니 그동안 복잡했던 생각들이 날아가면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여유가 생겼다. 차선을 변경하려던 찰나 허벅지가 부르르 떨렸다. 주행 중에 여러 번 같은 경험을 했다. 나중에서야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이동하면 이를 졸음운전으로 간주해 시트가 떨려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설명을 들었다.
한번은 좌측으로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지시등을 켜고 이동하려는데 룸미러의 경고등이 켜지면서 경고음이 울렸다. 방향지시등을 켰는데도 꾸중을 들은 것 같아 억울했다. 자세히 보니 좌측 후방에서 차량이 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두 시간 남짓 K9와 함께한 시간을 반추했다. 담백한 첫인상과 묵직한 주행감, 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멋. K9는 한마디로 중후한 멋을 담은 차였다.
“감독님, 이 차가 처음엔 잘 안 팔렸는데, 이제 숨통이 좀 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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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