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손톱 밑 가시’에서 시작해 ‘원수, 암 덩어리’ 발언까지 규제개혁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발언 6개를 꼽았다. 시간 순서대로 ①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를 없애겠다 ②규제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③진돗개 정신, 사생결단으로 풀자 ④규제혁파 안 하면 일자리는 연목구어(緣木求魚) ⑤호수에 돌(규제) 던지면 개구리(민간)는 죽는다 ⑥규제는 원수, 암 덩어리 등 여섯 개를 제시하고 이 중 베스트와 워스트를 꼽게 했다. 대기업 사장부터 중견기업 오너, 기업의 임원과 간부급 직원까지 15명이 질문에 답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시간이 갈수록 규제 발언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 15명 중 5명이 취임 초 ‘손톱 밑 가시’를 베스트로 꼽았다. 뒤이은 ‘악마는 디테일(지난해 9월)’ 발언도 3명으로부터 가장 공감이 가는 표현으로 선정됐다. 반면 가장 최근에 나온 ‘원수, 암 덩어리’에 대해서는 15명 중 7명이 공감하기 어려운 워스트 발언이라고 답했다.
‘악마는 디테일’은 “법은 멀쩡한데 시행령 등에 독소조항이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대기업 사장), “규제의 목적과 다른 엉뚱한 결과를 외면하는 공무원의 생리를 잘 꼬집었다”(대기업 팀장급)며 대통령의 시각에 큰 공감을 표시했다.
‘원수, 암 덩어리’와 ‘진돗개 정신’에 대해선 표현이 너무 세다는 것도 있지만 “규제가 생겨난 이유를 무시할 뿐 아니라 죄악시하는 것 같아서 문제가 있다”(대기업 팀장급)는 비판론이 나왔다.
1년여 전 동아일보는 ‘손톱 밑 가시를 뽑자’ 시리즈 기사에서 기업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나쁜 규제’를 발굴해 보도했다. 컵라면에 물 부어주는 것도 불법인 PC방의 사연으로 시작해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그중 일부는 몇 달 뒤 실제로 규제가 풀리는 성과를 냈다.
가장 힘든 건 ‘나쁜 규제’를 판별하는 일이었다. 모든 규제는 합당한 이유를 갖고 태어났고, 이해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지적하기 어려웠다. 열 개를 발굴해 아홉 개를 ‘킬’(게재 취소를 뜻하는 신문기자들의 용어)하는 일을 반복하며 겨우 시리즈를 이어갔다.
기왕 나온 말, 암 덩어리라고 표현했으니 집도의인 박 대통령은 나쁜 규제만 섬세하게 통째로 도려냈으면 한다. 그리고 암이 재발하면(반드시 재발한다) 과거엔 생살이었던 새로운 암 덩어리를 도려낼 수 있는 끈기와 용기를 갖기 바란다. 기업들은 불도저식 규제완화보다는 스마트한 규제완화를 바라고 있다.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