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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식스키 대부, 휠체어 춤에 푹빠지다

입력 | 2014-03-14 03:00:00

8년전 은퇴한 前국가대표 감독 김남제씨
4번째 소치패럴림픽 폐막식서 휠체어 댄스




‘좌식스키의 대부’에서 휠체어댄서로 변신한 김남제씨가 13일(한국 시간) 숙소인 러시아 소치 아지무트 호텔에서 춤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소치=사진공동취재단

벌써 네 번째 겨울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이다. 지난 세 번은 선수나 감독으로 참가해 눈밭을 누볐다. 2014년 러시아 소치. 그는 한 번도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선수단이 아닌 공연단의 일원으로 왔기 때문이다.

김남제 씨(52)는 한국 좌식스키의 선구자이자 대부다. 1998년 나가노 겨울패럴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좌식스키 선수로는 한국 첫 올림피안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선수 겸 감독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틀어 설상 종목에서 첫 은메달을 딴 한상민을 지도했다. 2006년 토리노에서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국내 좌식스키 선수들은 모두 그의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꽤 잘나가는 비장애인 스키 선수였다. 눈이 많은 강원 횡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덕에 일찍부터 설원과 함께했다. 강릉상고 3학년부터 단국대를 졸업할 때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특전사 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김 씨는 1989년 개장한 무주리조트에 입사했다. 짬짬이 스키를 가르치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임원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 됐다. 1992년 5월 4일. 어린이날 이벤트를 하루 앞두고 패러글라이딩 연습을 하다 추락했다. 척추 뼈 이곳저곳이 부러졌다. 골반과 갈비뼈를 이식해 척추 모양을 갖췄지만 두 다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스키를 탈 수 없게 된 김 씨는 그림에 몰두했다. 199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한 뒤 전업 화가로 활동했다. 4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100회가 넘는 그룹 전시회에 참가했다. 1996년 말 좌식스키를 접하면서 그는 눈 위로 돌아왔다. 10년 넘게 좌식스키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2006년 토리노 패럴림픽을 끝으로 그는 소리 없이 스키장을 떠났다.

“오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죠.”

김 씨는 2008년부터 휠체어댄스를 시작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에 늦게 시작한 것 치고는 실력이 빨리 늘었다. 2012년부터 아시아선수권 등에서 우승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열린 휠체어댄스 스포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프리라틴 3위, 라틴 5종목 4위를 기록했다. 세계선수권에서 아시아인이 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올해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일단 태극마크부터 달아야겠죠.”

김 씨는 17일(한국 시간) 오전 1시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폐막식에 ‘휠체어 퍼포머’로 등장한다. 차기 개최지인 강원 평창의 대회기 인수와 함께 그의 무대가 막을 올린다.

꿈을 가진 이는 많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일은 드물다. 스키 선수로, 감독으로, 화가로, 그리고 댄서로…. 휠체어 위의 김 씨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소치=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