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지도/제리 브로턴 지음/이창신 옮김/692쪽·3만3000원/알에이치코리아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2년(1402년)에 제작한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470년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사본.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개인적으로 어떤 책이건 국내에 번역되며 제목이 바뀌는 게 싫다. 작가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진의 파악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 책도 원제는 ‘12개 지도의 세계사’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지도에 인간의 욕망이 투영됐다는 논지를 부각시켰다는 면에서 가점을 주련다. 여전히 ‘제목 바꿔달기’엔 동의 못 하겠지만.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역시 1402년에 제작됐다는 조선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혼일강리도)’를 다룬 4장 ‘제국’이 가장 흥미로웠다. 해외학자가 이만큼이나 한국사에 해박한 것에 일단 놀랐다. 또한 그 지도에 당시 중국이란 강국과 상대하며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가며 독자적 노선을 걸은 조선의 웅지가 배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참고로 혼일강리도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이 등장하는 현존 최고의 지도이기도 하단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런던 패딩턴 역에서 발견한 한 낙서를 소개한다. “멀리 떨어진 곳도 다른 곳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세상에 완벽한 지도란 없다. 그만큼 상대적이고 다양한 가치관이 지도에 담겨 있다. 지도는 단지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열쇠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