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건설경기 침체로 자금난 허덕… CP-회사채 팔아 위기 모면했지만10월부터 채권판매 못해 돈줄 막혀… 특단대책 없으면 법정관리 갈 수도
오리온그룹이 일가(一家)인 동양그룹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채권은행들이 자금을 대는 데 난색을 표하고, 기업어음(CP) 및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도 어려워져 재계 순위 38위 동양그룹은 큰 위기를 맞았다.
오리온그룹은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오리온그룹과 대주주들은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 의사가 없으며 앞으로도 지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동양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발행한 CP 상환을 위해 1조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담 회장 부부가 보유한 오리온 지분(27.4%) 일부를 ABS의 담보로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은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딸들이다.
시멘트, 레미콘 등이 주력 사업인 동양그룹은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계열사인 동양매직 등의 매각이 차질을 빚으면서 자금난을 겪어 왔다.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자 동양그룹은 연 7∼8%대의 높은 금리를 주고 만기 1년 이내의 CP와 회사채를 발행하며 위기를 넘겨 왔다.
하지만 10월부터 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투기 등급 CP·회사채 등을 투자자에게 권유할 수 없도록 금융투자업 규정이 바뀌면서 동양그룹은 직격탄을 맞았다. 동양그룹 CP의 절반가량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팔린 터라 사실상 자금줄이 막힌 것이다.
동양그룹으로서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 차입금과 달리 회사채나 CP는 채권단이나 당국이 손을 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상환을 못할 경우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동양그룹에 대출을 가장 많이 해 준 은행인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추가 자금 지원 여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동양그룹 측은 “현금을 들여올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대치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계열사와 자산을 팔아 부도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매각에 나서는 터라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상훈·류원식·장관석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