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상명대 석좌교수
그때에 비한다면 지금 훈련병들의 문화는 경이롭게 변했다. 탈영하는 병사도 없거니와 배고파서 탈영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풍요의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 우리의 국방을 짐 지운 젊은 병사들을 위한 사회문화적 예우가 충분한 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홀대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KTX ‘논산훈련소’역이 설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사 중인 호남선 KTX에서 논산 인근의 역으로는 익산역과 공주역이 있을 뿐이다. 국방의 간성인 훈련소역을 배제한 것은 계획 단계에서의 ‘정치적인 고려’라고밖에 볼 수 없다. 논산훈련소는 일 년에 12만 명 이상이 입대하고 매주 1800여 명의 훈련병이 영외면회를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인근엔 항공학교, 국방대, 3군본부가 있고 우리 국방의 초석이 될 국방대학원은 시공을 앞두고 있다. 논산을 오고 갈 군인과 그 가족들의 수가 최소 연간 1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국가안보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한 부대 이동이나 군수물자의 수송은 또 어떻겠는가.
사정이 이런데도 예산 타령을 하면서 ‘훈련소역’을 배제한 걸 방치하는 것은 국방을 최우선시하는 정부나 집권당, 군 지휘부의 총체적 직무유기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당신들은 좋은 승용차로 왔다 갔다 할 테니 병사들이나 그 가족들은 버스나 완행열차 타고 고행하듯 오가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유사시에 군 지휘부의 요인들이나 이동해야 할 병사들이 차량 정체에 막혀 도로 위에 갇혀 있더라도 문제 될 거 없다는 뜻인가.
요즘 나는 논산에서 살고 있다. 예절과 충절의 전통이 깊은 이곳에서 사는 일이 나는 늘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내겐 좋은 차가 있고, 그러므로 KTX를 이용할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내 주장을 사적인 욕심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훈련병을 면회 온 늙은 어머니나 할아버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논산역에 내려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한 채 허리를 두드리고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늦었다면 간이역 수준이라도 상관없다. 나라를 위해 빛나는 젊은 날을 바치고자 입대한 훈련병들과 그 가족을 위해 ‘훈련소역’을 설치해 최소한 입대, 배출 날짜와 면회하는 날이라도 선별적으로 열차가 설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그 어렵던 이승만 시절에도 논산훈련소가 있어 철도를 깔고 ‘연무역’을 만든 것이 정부였다. 국방, 특히 병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때에 비해 퇴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줄 한 상징으로서 ‘훈련소역’의 문제가 있다.
박범신 작가·상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