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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공무원 1만8000명 145조원 ‘뇌물 먹튀’

입력 | 2013-08-13 03:00:00

최근 19년간 하루 평균 2.6명 사라져… 5년간 6220명만 체포




중국 후난(湖南) 성 왕셴(王仙) 진의 재정소(재정 담당 부서) 소장이던 정위안화(鄭元華)는 올해 5월 이후 4개월째 무단결근 중이다. 주변에선 지역 재정을 주무르던 그가 300만 위안(약 5억4400만 원)을 들고 튀었다는 소문이 돈다. 정 소장의 평소 행실로 볼 때 숨겨 둔 돈이 더 있겠지만 도박으로 탕진한 탓에 그 정도만 들고 달아났다는 말도 나온다.

반부패 사정 열풍에 휴가 내고 잠적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반부패 사정(司正) 열풍이 불면서 공무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종적을 감추거나 해외로 도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이 착복한 돈을 들고 국외로 달아나기 때문에 중국의 국부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신징(新京)보에 따르면 최근 정 소장을 비롯해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 시 화두(花都) 구의 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옌웨이(王雁威), 후베이(湖北) 성 궁안(公安) 현 목축수의국장 차이다오밍(蔡道明) 등 지방정부에서 잘나간다는 공무원들이 ‘실종’됐다.

왕 주석은 6월 3일 질병을 핑계로 휴가를 낸 뒤 종적을 감췄다. 광저우 시 기율위원회는 그를 면직 처리했지만 붙잡지는 못했다. 차이 국장은 아내에게 몸이 안 좋다고 말한 뒤 갑자기 사라졌다.

1인당 80억원 반출… 국부유출 큰손실

중국 공무원들의 ‘뇌물 먹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신문은 런민(人民)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1990년 이후 2008년까지 외국으로 도피한 당과 정부, 공안·사법기관, 국영기업의 간부가 1만800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들이 들고 간 돈은 8000억 위안(약 145조5920억 원)에 이른다. 19년간 하루 평균 2.6명이 실종됐고 1인당 4400만 위안(약 80억756만 원)을 반출한 셈이다.

중국은 유엔 반부패협약에 가입하는 등 먹튀 공무원들을 잡아들이려 하고 있다. 최고인민검찰원이 올해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잡아들인 ‘실종 관원’은 6220명, 추징금은 553억 위안(약 10조668억 원)이다. 하지만 한없이 느슨한 수사 시스템 때문에 손안에 든 부패 사범마저 유유히 사라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3월 사라진 광둥 성 선전(深(수,천)) 시 난산(南山) 구 정협 주석 원링(溫玲)은 당국의 내부 조사 기간에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1997년 난산 구 과학기술국장으로 있을 때 선전 시의 ‘10대 우수 청년 공무원’으로 뽑혔던 그는 엄중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일부 매체는 그가 2억 위안(약 364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원 주임은 언니 아들의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간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부패 사범 워낙 많아 조사중 도망 다반사

검찰에 고발된 뒤에 사라진 공무원도 적지 않다. 지난해 랴오닝(遼寧) 성 기율위원회는 한 전력회사의 비리를 조사하다 펑청(鳳城) 시 서기 왕궈창(王國强)이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 기율위는 검찰에 사건을 이송했지만 왕 서기는 선양(瀋陽)의 미국 총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아내와 함께 출국했다. 그는 서기로 재직하면서 공무 여권이 아닌 개인 여권을 미리 만들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부패 전문가 리융중(李永忠) 씨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당원과 공직자가 당과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인신 구속 등 강제 조치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부패 사범이 워낙 많기 때문에 조사 순서와 기간 등을 미리 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보가 새 나가거나 자신의 조사 시간을 기다리다 도망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왕궈창처럼 지방정부의 최고위급인 당 서기가 비리를 저지를 경우 해당 지역 기율위원회가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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