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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가 도착했다… ‘1시간 전쟁’이 시작됐다

입력 | 2013-08-12 03:00:00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해 7일 오후 2시 56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한 아시아나 항공기(B747-400)가 41번 주기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유도사가 항공기를 주기장으로 유도하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기내 방송이 나올 때면 탑승객들은 지난 여정을 뒤로하고 제각기 다음 목적지로 향할 생각을 한다. 지상의 풍경을 바라보며 비행기가 착륙할 때 느꼈던 막연하고도 근원적인 공포를 털어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항공기 조종사는 주기장(駐機場)에 나와 있던 정비사에게 항공기 상태와 비행 중 특이사항을 무전기로 알린다. 모든 탑승객이 내리면 조종사와 승무원의 역할은 대부분 끝난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탑승객 수속, 기내식 탑재, 급유, 화물 및 수하물 적재, 기내 청소 등의 업무를 하는 ‘지상 조업’ 직원들이다. 한 항공기에 많게는 수십 명이 달라붙어 짧게는 1시간 내외에 모든 조업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해낸다. 휴가철을 맞아 항공 수요가 많은 8월이면 이들의 일손은 더욱 분주해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인 아시아나에어포트의 지상 조업 현장을 지켜봤다. 아시아나에어포트는 1988년 2월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출범했다.

급유 탑승객이 모두 내리면 연료를 주입한다. 급유차는 주기장 지하 연료 배관과 항공기를 연결한 뒤 압력을 가해 연료를 채워 넣는다.

○“비행기를 새 것처럼 만들어라”

7일 오후 인천공항 주기장.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받아 달궈진 시멘트 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평균 83.3dB(데시벨)의 소음에 귀가 멍하고 잘 들리지 않았다. 소음 때문에 직원들은 귀마개를 착용했고, 짧은 거리에서도 무전기로 교신하고 있었다. 공항 탑승대기실에서 주기장에 서 있는 비행기를 바라볼 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고 한가로워 보였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후 2시 56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승객 357명을 태우고 날아온 아시아나 여객기(B747-400)가 착륙한 뒤 41번 주기장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이 비행기는 불과 한 시간 반 뒤인 오후 4시 반에 승객 352명을 태우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야 한다.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상 조업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은 잘 짜인 합주곡 연주를 연상시켰다. 각자 맡은 임무와 구역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뉴얼대로 진행됐다.

청소 기내 청소 요원들이 투입돼 객실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식탁과 팔걸이, 화장실 등 곳곳을 소독약을 묻혀 닦아 낸다.

○객실 비우고, 기내식 채우고

흰색 타월이 가득 담긴 비닐 봉투를 손에 든 여성 20여 명이 특공대처럼 기내로 투입됐다. 객실 청소 담당인 이들은 승객이 먹고 잔 흔적을 말끔히 없앤다. 좌석 식탁과 팔걸이, 선반 등 승객의 손이 닿는 모든 곳을 소독약으로 닦아낸다. 모포와 베개도 제자리에 놓고 잡지도 가지런히 정리한다. 등에 멘 진공청소기로 카펫의 먼지를 빨아들이던 이명한 씨는 “객실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내 먼지 제거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객실을 청소할 때 가장 힘든 작업은 화장실 청소인데 돌아가며 순서대로 한다고 했다. 비행기가 크다 보니 20여 명이 동시에 투입됐는데도 청소를 마치는 데 꼬박 30분이 걸렸다.

승객이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갑이나 스마트폰, 태블릿 PC가 주로 발견된다. 이따금 여권을 놓고 내리는 탑승객도 있다. 청소를 하던 조춘옥 씨는 “비행기 한 대당 많을 때는 서너 개꼴로 놓고 내린 물건이 발견된다”며 “수하물팀에 알려 주인을 찾아준다”고 말했다.

이어 기내식을 담은 ‘케이터링 카’가 주기장에 도착했다. 식사 카트를 비행기 2층으로 올렸다. 352인분의 식사가 바퀴 달린 카트에 담겨 차례로 기내에 들어갔다.

항공기 밖으로 나오자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화장실의 오물을 빼내는 ‘래버토리 트럭’이 보였다. 화장실에 모인 오물은 항공기 아래 오물 탱크에 저장된다. 래버토리 트럭은 비행기의 오물 탱크에 호스를 연결한 뒤 강한 압력으로 오물을 바깥의 탱크로 빨아들인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오물이 모인 만큼 청소 때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고 농담을 할 때도 있다”며 “기내 화장실 변기에 손님들이 이물질을 버리면 가정용 화장실처럼 변기가 막히기도 하는데 이때는 사람이 직접 이물질을 제거한다”고 말했다.

연료를 보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급유차가 도착해 항공등유를 넣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는 40분 동안 3만5000갤런(약 13만2489L)이 채워졌다. 주기장 지하에 연료가 흐르는 배관이 설치돼 있다. 급유차는 이 배관과 항공기를 연결해 연료를 채운다. 김유식 아시아나에어포트 급유시설운영팀장은 “항공연료는 항공기 하부와 날개에 있는 저장탱크에 보관되는데 항공기 하부 탱크의 연료부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기내에 실렸던 화물과 수하물을 내렸다가 다시 싣는 작업도 이어진다. 10t이 넘는 화물도 15분 정도면 청사로 옮겨진다. 항공기 아래에 수하물이 들어가는 컨테이너 10개(총 5.7t)와 팔레트 6개(총 5t)가 실려 있다.

기내식 탑재 지상 조업 막바지에는 기내식을 담은 ‘케이터링 카’가 주기장으로 들어온다. 조업사가 기내식을 담은 카트를 내부로 옮기고 있다.

○“귀를 찢는 엔진소리조차 정답다”

1시간가량의 지상 조업이 끝나갈 때면 승객들이 차례대로 기내에 오른다. 출입문이 닫히고 브리지는 기체와 분리된다.

새로운 비행을 위해 남은 마지막 절차는 ‘푸시백(push-back)’이다. 항공기는 후진을 할 수 없으므로 ‘토 트랙터’가 엔진이 꺼진 항공기를 활주로 주변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토 트랙터는 무게가 50t이지만 430t까지 견인할 수 있다. 거대한 항공기가 느릿느릿 뒤로 밀려나더니 활주로 앞에 섰다.

이제 작별의 순간이다. 광활한 활주로 앞에 선 항공기 옆에서 정비사와 유도사들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씻기고 배불리 먹인 자식 같은 비행기가 힘차고 안전하게 이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아시아나에어포트의 8월 하루 평균 조업 항공기(화물기, 외국 비행기 포함)는 276대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 인천 안전정비팀 오봉상 정비사(44)는 “안전 하나만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귀를 찢을 것만 같은 엔진소리마저 정답게 들린다”고 말했다.

인천=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