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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손택균]나는 괜찮겠지, 나는 아니겠지

입력 | 2013-07-18 03:00:00


손택균 문화부 기자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촘촘히 메운 3000여 명의 관객이 일순 환호를 멈췄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박수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무대 위에 홀로 두 손을 모으고 수줍게 서 있던 은발 피아니스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잠깐 고민하는 듯하던 연주자는 잠시 후 희미한 미소로 미간 주름을 털어내며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그가 피아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터져 나온 박수와 환호는 좀 전의 몇 배나 두툼하고 무거웠다. 관객들의 안도와 감사, 미안한 마음이 더해진 무게였다.

2년 전 재즈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의 솔로내한공연 막바지에 벌어진 일이다. 입장 때 나눠준 공연안내문에는 ‘연주자가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립니다. 플래시가 터져 공연을 중단한 적도 있습니다. 자제 부탁드립니다’라고 맨 위에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달 초 막을 올린 손숙 주연의 연극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 초반부. 행사장 소감 발표 장면을 연기하던 배우 김원해가 갑자기 재킷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어? 뭐라고? 아냐, 나 연극 봐…. 술 먹는 거 아니라고! 연극 본다고 연극! 여기? 예술의 전당! 손숙 나오는 연극! 끊어!”

쿡쿡 웃음소리 새어나오는 객석을 잠시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체념 섞인 어조로 말했다. “바로 어제 이 시간, 이곳에서 일어났던 상황입니다. 여러분, 정말… 휴대전화 다 끄셨죠?” 관객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에.”

50여 분 뒤. 딸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주인공의 긴 흐느낌을 객석의 소리 하나가 톡 비집고 들어와 끊었다. 작고 짧으나 명료한 소리였다. “문자 왔숑.”

역시 이달 초 나란히 선보인 국내 초연 뮤지컬 화제작 ‘스칼렛 핌퍼넬’과 ‘하이스쿨뮤지컬’ 시작 전에는 애처로운 신신당부 안내방송이 길게 이어졌다. 상냥한 목소리가 스피커 속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있는 듯 들렸다. “정말, 꼭 좀 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휴대전화 벨 소리는 무대 위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곧바로 큰 영향을 줍니다.”

스칼렛 핌퍼넬의 애절한 사랑가는 “문자 왔숑” 한 방에 허리가 끊겼다. 하이스쿨뮤지컬 옆자리에 앉은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연신 스마트폰 불빛을 밝히며 노래 정보를 검색해 아이 코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지금 저 노래 제목이 영어로는 ‘What I've Been Looking For’래. ‘look for’가 무슨 뜻이라고 했지?”
 ‘아티스트’ 상영관은 인내심과의 싸움터였다. “삐리릭. 뾰로롱. 띠링. 문자 왔숑.” 한 영화수입 배급사 관계자는 “사전시사회 때 참석자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관하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시사회 참여자들의 거부 사유는 ‘프라이버시 침해’다”라고 말했다.

나와는 무관한 문제일까. 나는 그런 몰지각한 사람이 아닐까.

‘그래, 나부터가 문제였어. 무조건 끄자. 두 시간만.’

한 사람씩 그렇게 마음먹을 때 공연장은 더 행복해질 거다. 아주 조금씩일지라도.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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