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선생님 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는 초등학생 조카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이었다. 수다를 떨고 있던 우리 어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에게 쏠렸다.
“어떻게 해놓고 사시는데?”
“우리 선생님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나 있고, 어항에 금붕어가 다섯 마리나 있어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읽어보니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급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외국어 하나, 스포츠 하나, 악기 하나를 할 수 있고, 남과 다른 요리 레시피 한 가지를 갖고 있으며,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것을 꼽았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책상에 비평지 한 권이 놓여 있을 것, 사회적 약자 돕기 등 우리처럼 경제력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결혼 후에 남편과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잡화상이 날로 번창하면서 이웃의 가게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가게 규모를 줄였다. 덕분에 시간의 여유가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아사히신문 1000만 엔 현상공모 소설에 ‘빙점’이 당선돼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가게가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버는 와중에 이웃의 작은 가게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동했다. 만약 그녀가 돈 버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계속 가게 확장에 매달렸다면 부자는 될지언정 유명한 소설가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짜 부자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물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많이 들이켜면 들이켤수록 더 갈증이 난다고 했다. 미우라 아야코처럼 돈 버는 속도를 조금 늦추면 다른 삶도 꿈꾸어 볼 여유가 생기고, 이웃의 작은 가게도 살아남는다. 평생 아파트 평수와 은행 잔액 늘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으로 가난한 삶이다.
가끔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자신만의 요리를 해주는 아빠, 아이를 데리고 봉사활동을 함께 가는 엄마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중산층이다. 게다가 고양이도 기르고 금붕어도 있고 화분에 꽃이 만발해 있다면 아이의 말대로 그건 진짜 부자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