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펴낸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은 “제가 냉소적이라고 말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냉소의 기술’을 모르는 게 인간 최영미의 가장 큰 약점”이라며 웃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시집을 덮은 그가 빙그레 웃었다. “좀 야하죠? 최근에 쓴 시예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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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차가웠고,/나는 뜨거웠고,/그리고 너를 잊기 위해 만난/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미지근한 남자들./내 인생의 위험한 태풍은 지나갔다…내일은 전국이 흐리고,/나는 샴푸를 사러/나갈 것이다’(시 ‘일기예보’에서)
남북한 정치현실을 풍자한 시들도 눈에 띈다. ‘할아버지도 돼지./아버지도 돼지./손자도 돼지.//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꽃 속에 파묻힌 아버지를 보며/꼬마 돼지가 눈물을 흘린다’(시 ‘돼지의 죽음’에서)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시인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북한 관련 뉴스가 이어지던 그때 시인은 노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시를 썼다고 했다.
그가 서른셋에 펴낸 시집 ‘서른…’은 20년 가까이 그를 따라다니는 영광이자 상처다. 그의 도발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담론은 당시 운동권을 들끓게 만들었다. “제가 갖고 있는 도발적, 냉소적 이미지는 사실 출판사가 마케팅 과정에서 만든 이미지예요. 책은 많이 팔렸지만 제 문학은 끝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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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잊기 전에 쓰려고요. 1980년대 후일담 소설들은 대개 집단의 의지나 경험에 초점을 맞췄지만 저는 저 개인의 경험을 얘기하고 싶어요. 어떤 면에선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보다 정확하다고 믿거든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