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그랜드 마퀴스’/ 엘리자베스타운
캐머런 크로 감독의 2005년작 ‘엘리자베스타운’은 이러한 공상이 시작된 계기였습니다. 이상(理想)에 가까운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죠.
유명 신발업체의 디자이너 드류(올랜도 블룸 분)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자신이 디자인한 신발이 실패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직업을 잃습니다. 곧바로 오리건에서 3700km 떨어진 켄터키의 작은 마을, 엘리자베스타운에 사는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습니다. 아버지가 생전 즐겨 입던 파란색 양복을 들고 드류는 비행기에 지친 몸을 싣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뜻밖의 환대는 늘 유쾌했고 삶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유산입니다. 조금씩 떠오르는 유년기의 추억. 장례식장은 웃음으로 채워집니다. 유족과 아버지의 친구들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명곡 ‘프리버드’를 신명나게 연주합니다.
드류는 클레어가 준비한 여행 경로를 따라 화장된 아버지의 유골을 차에 싣고 대륙 횡단에 나섭니다. 늘 미뤄왔던 부자(父子)간의 여행, 미국의 아름다운 대자연과 풍광 속에 아버지를 조금씩 흘려보냅니다. 뒤늦은 회한과 눈물, 오랫동안 놓쳐왔던 소중한 삶의 가치가 드류의 빈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슬픔을 걷어낸 그의 눈에는 새로운 세상이 보이겠죠. 인생, 아름답게 떠나기 위해 살아갈 만하지 않을까요.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