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장미(Rose)의 애칭인 로제타는 프랑스어권에서 여자아이에게 많이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1999년 벨기에에서 개봉된 영화 ‘로제타’의 주인공 10대 소녀 로제타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일하던 식품공장에서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된다.
관리자에게 강하게 항의해 보지만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다. 천신만고 끝에 와플 가게에서 새 일자리를 얻고, 실업자 청년 리케를 만나 행복감에 빠져든 것도 잠시.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만다. 리케의 속임수를 폭로해 간신히 일자리를 되찾고 돌아온 로제타. 집에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이던 어머니가 숨을 거둔 채 누워 있다. 기막히는 현실에 가스를 틀어 자살하려 하지만 가스통은 바닥이 나 있다.
50인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전체 고용인원의 3% 이상을 청년층으로 고용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도록 한 정책이다.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1999년 22.6%이던 벨기에의 청년층(15∼24세) 실업률은 시행 첫해인 2000년 15.2%까지 뚝 떨어졌다. 그해에만 5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겼다. 벨기에 사회는 환호했다.
슬프게 시작된 로제타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3년 뒤인 2003년 청년실업률은 21.8%로 다시 늘었다. 2010년에는 22.4%까지 증가했다. 만들어진 일자리의 상당수는 ‘파트타임 잡’ 등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또 기업을 옥좨 만든 일자리는 지속되지 않아 청년실업이 다시 늘어나는 요요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청년실업 해결의 묘안처럼 보였던 이 정책은 결국 초저학력자를 구제하는 정책으로 전환됐다.
대선을 앞두고 청년실업과 관련해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일자리 나누기,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해 당장이라도 청년실업을 해결할 기세다. 이 중에는 로제타플랜을 모델로 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청년고용의무할당제’도 있다.
300인 이상 민간 대기업에 청년층을 매년 3%씩 새로 뽑도록 의무화하고 지키지 않으면 ‘고용분담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청년층을 정원의 3% 이상 유지하도록 했던 로제타 플랜보다 더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로제타플랜의 슬픈 운명을 볼 때 민간기업을 규제해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 청년실업을 해결할 근본적 해법이 될지 의문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