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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무장경찰 500m 간격 깔려… 여관 갔더니 “기자 숙박금지”

입력 | 2012-11-30 03:00:00

11월에만 20여명 분신… 저항의 땅 티베트를 가다




아직도 선명한 분신의 흔적 중국 칭하이 성 퉁런 현 룽우 사원 앞 티베트인 분신 현장의 나무로 된 제단 모서리는 불에 탄 흔적이 뚜렷하고 콘크리트 바닥도 검게 그을려 있다. 티베트인들이 앞의 불상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퉁런=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고기정 특파원

“어떻게 들어왔어요?”

27일 중국 서북부 칭하이(靑海) 성 황난(黃南) 티베트족(藏族·짱족)자치주 퉁런(同仁) 현에서 처음 만난 현지 택시 운전사의 첫마디였다. 해발 3000m 이상에 위치한 칭하이와 간쑤(甘肅) 성 일대 티베트인 밀집지역이 ‘접근 금지’ 구역임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실제로 외부와 통하는 도로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15일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가 출범한 후에도 티베트인의 분신은 계속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20여 명, 2009년 이후로는 80명을 넘어섰다. 승려, 14세 소년, 두 아이의 엄마까지 몸에 불을 지르고 분신 지역도 티베트 자치구 중심인 라싸(拉薩)에서 칭하이 성과 간쑤 성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철저한 보안과 통제로 자세한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1월에만 10명 넘게 분신 사망자가 발생한 칭하이 성 황난과 간쑤 성 간난(甘南)의 티베트족자치주에 들어가 티베트인의 항거와 죽음의 현장을 르포했다.

27일 새벽 시외버스를 타고 칭하이의 성도(省都) 시닝(西寧)을 출발해 3시간가량을 달리자 도로 한쪽을 바리케이드로 막고 검문검색하는 공안들이 나타났다. 차에 올라탄 공안은 일부 승객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외지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이어 30분쯤 가니 공안들이 또 버스를 세웠다. 역시 신분증을 검사한 뒤 버스 운전사의 사인을 받고 통과시켰다. 도로 검문을 피하려면 최고 4700m의 눈 덮인 산들을 걸어서 넘어야 한다.
▼ 분신 얘기 꺼내자 “팅부둥, 팅부둥” 말문 닫아 ▼

기자도 철저한 검문을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닝에서 시외버스를 탈 때 만난 경찰 옆에 앉아 있던 것이 주효했던 듯했다. 차에 올라 검문하던 공안은 경찰 주변의 승객들에게는 따로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가슴 졸이며 두 번째 검문까지 통과한 뒤 30여 분 만에 도착한 퉁런 현 소재지. 여러 티베트인들이 분신한 곳이라는 생각에 현에 들어서기 전부터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퉁런은 1301년 건립된 룽우(隆務) 사원이 있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로 인구 7만3000여 명 중 78%가 티베트인이다. 시닝에서 고원지대 180여 km를 4시간가량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이곳은 2008년 티베트 사태 때도 대규모 시위가 분출한 곳으로 이달 들어서도 10명(국제인권단체 등 집계 기준)이 분신했다.

현청 소재지는 생각보다 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계엄 상태에 있는 곳 같은 느낌이었다. 지역 공산당위원회 등 관공서나 은행 주변은 물론이고 도로를 따라 약 500m 간격으로 무장 경찰 6, 7명이 조를 짜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일반 경찰 차량도 계속 시내를 돌면서 순찰 중이었다. 룽우 사원 앞 광장에는 몇몇 티베트인이 오체투지(五體投地·두 무릎과 두 팔, 그리고 머리를 땅에 대면서 하는 절)를 하고 있는 가운데 분신 당시의 불로 그을린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언제라도 누군가 뛰어나오면서 또다시 몸에 불을 붙일 것 같은 섬뜩함도 느껴졌다.

한 한족(漢族) 주민은 “단체관광은 완전히 중단됐고 개인들이 들어오는 것은 검문으로 막고 있다”며 “외국인을 본 지 몇 달 된 것 같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이곳에선 앞서 9일에도 학생들을 포함해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가 20명 이상이 잡혀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분위기가 살벌하다 보니 현지 티베트인들은 무장 경찰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도로를 가로질러 돌아가곤 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막혀 예년 겨울이면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객들로 붐볐을 룽우 사원은 방문객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퉁런에서 상커(桑科) 초원을 거쳐 차로 2시간(104km) 거리에 있는 간쑤 성 간난의 티베트족자치주 샤허(夏河)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관광지로 개발된 때문인지 진입로에서 검문도 하지 않았고 시내에도 무장경찰이 없었다. 서양인도 일부 보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숙박은 일절 금지됐다. 한 여관 주인은 “(이달 8일 열린)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전부터 기자들을 받지 말라고 했다. 중국 기자들도 안 받는데 외국 기자를 받으면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곳에서는 26일에도 18세 소년이 분신해 숨졌다.

중국 당국이 티베트인 밀집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보도를 막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서 발생한 분신 사건과 시위 현황은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나 영국 미국에 있는 티베트 인권단체를 통해서 외부에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보량이 극히 제한적이다.

퉁런과 샤허 주민들도 인터넷을 쓰고 PC방도 있지만 내부 소식이나 사진이 밖으로 유출이 잘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현지를 둘러보고 티베트인들을 만나 보니 가장 큰 이유는 ‘공포’였다. 여기에 공안 당국의 감시뿐 아니라 주민들 간 상호 감시도 도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티베트인과 달리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를 할 줄 아는 룽우 사원의 한 티베트족 관리인은 절의 역사 등을 설명하다 “사원 안에는 왜 경찰이 없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곁눈질로 “관(官)에서 온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절 내부까지 들어온 검은색 승용차 안의 사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에게 최근 발생한 분신 사건을 물어보자 갑자기 “팅부둥, 팅부둥(聽不)·알아들을 수 없다)” 하며 입을 닫아 버렸다. 아예 질문도 듣지 않겠다는 극도의 경계심의 표현이었다.

시닝의 한 티베트 관계자는 “2008년 사태 때 구속된 승려들이 아직까지 못 나오는 경우도 있고, 출소한 승려들은 1년 넘게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며 “감옥에 갔다 온 승려들이 환속해 버리거나 대정부 항의에 다시 나서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티베트인들과 섞여 사는 한족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듯했다. 티베트인들은 이웃인 한족들이 언제든 당국의 정보원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쑤 성에서는 티베트인 분신 기도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면 최고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티베트인 간의 조직화된 저항 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승려나 일반인이 혼자 혹은 기껏해야 2, 3명씩 함께 분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티베트 문제를 ‘영토와 관련한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무시하며, 중국 내 인권운동가들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티베트인들은 점점 더 고립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로비 바넷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2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티베트인들은 분신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며 그나마 호소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족이 경제권 장악… 가난이 저항 불질러 ▼


■ 티베트인 독립 요구 왜?

“우리가 생각하는 핵심 과제는 티베트인(藏族·짱족)들의 분신을 막는 게 아니라 그들이 먹고살 만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중국 정부의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중국은 티베트에 대해 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티베트 문제를 볼 때 ‘종교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와 함께 밑바탕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지적이었다.

중국 당국이 티베트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6년 개통된 칭짱(靑藏)철도는 한족의 유입을 도우면서 오지 개발을 위한 기반시설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올해 초에도 라싸(拉薩)에 300억 위안(약 5조2000억 원)을 들여 242만 평 규모의 문화관광 단지를 조성키로 했으며 60세 이상 승려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티베트 자치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만152위안으로 중국 평균(3만5083위안)의 57%에 불과하다. 분신 사건이 집중되고 있는 칭하이(靑海) 성 퉁런(同仁) 현은 1만6341위안에 그친다.

한 퉁런 주민은 “종교는 다음 문제다. 일반적인 티베트인은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티베트인들이 외부로 나가도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얼굴 생김과 생활 습관이 다른 티베트인들이 한족들처럼 대도시로 나가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어린 시절 티베트 학교를 다닌 경우가 많아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한족들이 티베트인 거주지로 몰려가 현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전통산업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으로는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막고 있는 점을 빼면 일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허용해 준다. 티베트 사원 안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역대 라마들과 함께 걸려 있다. 하지만 불평등에서 점화된 불만이 이질적인 민족 문화, 종교 문제와 얽히면서 때때로 독립 요구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 중국 내 티베트 문제의 현주소다.

퉁런·샤허=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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