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넘어 천신만고끝 밟은 한국땅, 그러나 눈꺼풀이 얼굴 덮는 희귀병에…
○ 장마당 할머니와 중국인 남편
“나이도 어린데 왜 여기서 고생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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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두만강을 넘었다. 조선족 안내로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에 도착했다. 열흘째 되던 날 중국인이 찾아와 버스에 그를 태웠다. 한나절이 걸려 도착한 곳은 하얼빈. 여기서 벼농사를 짓는 중국인 남편과 선을 봤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바로 결혼했다.
○ 북송 공포 속 희망은 주민등록증
다행히 여섯 살 위 남편은 마음이 따뜻했다. 손짓 발짓으로 말했다. 마음이 열렸다. 2010년에는 아들도 낳았다.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행복은 짧았다. 김정일이 죽자 중국 당국이 나서 탈북자를 대대적으로 적발해 북송(北送) 시켰다. 북한으로 끌려가면 가족과는 생이별할 게 뻔했다. 한국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강제 북송될 염려는 없을 텐데…. 가족을 영영 못 볼 일도 없을 텐데…. 남편을 설득해 홀로 남한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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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온 박선영 당시 선진통일당 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의원의 도움으로 한국 대사관에 들어갔다. 5월 한국에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주민등록증도 받았다.
지난달 하나원에서 나온 그는 돈을 벌기로 했다.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생각에서다. 하지만 사는 게 고된 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뒤부터 눈꺼풀이 혹처럼 자라나더니 이제는 얼굴을 덮는 상태가 됐다. 신경세포 끝에 혹이 자라는 병이다. 눈꺼풀은 폭 2cm, 길이 6cm가량으로 자라 광대뼈까지 덮었다. 그런 외모의 이 씨를 채용하려는 회사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희망’과 ‘온정’이 있었다.
박 전 의원과 북한인권의사회 회장으로 있는 박종훈 고려대 의료원 교수가 발 벗고 나섰다. 22일에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염원하던 혹제거 수술을 무료로 받는다. 이 씨는 13일 “수술 뒤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열심히 일해 잠시 두고 온 아들을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