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턴트맨 출신이라 강할 것 같죠? 밤샘촬영 뒤 기절… 깡으로 버텼죠”
정병길 감독은 “관객과 빠른 호흡으로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액션 비주얼의 희열이 있으면 관객의 드라마 몰입도도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백수로 지내며 비디오 가게를 전전할 때 점원의 자존심 상하는 제안. “직업이 없죠? 숙식 제공하는 공장 하나 소개해 줄까요?” 특기인 운동을 살려 스턴트맨을 양성하는 서울액션스쿨에 진학했다. 8일 개봉한 ‘내가 살인범이다’로 데뷔한 정병길 감독(32)의 인생 스토리다.
이 영화는 11일까지 70만 명 이상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최종 성적 300만 명 이상도 가능해 보인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흥행은 고생한 스태프 덕분”이라고 말했다. ‘무인(武人)’ 액션배우 출신다운 짧고 간결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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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턴트맨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액션신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스턴트맨 탓이 아닙니다. 카메라 앵글이 이들을 잘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영화의 백미는 형사 최형구(정재영)가 살인범 이두석(박시후)을 납치한 피해자 가족과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 배우들은 달리는 차 위를 건너뛰어 가며 싸운다. 지붕과 보닛에 매달리고 차들은 사정없이 서로 들이받는다. 차량 14대가 완파됐다.
“카메라 위치만 바꾸면 차가 빨리 달리는 느낌이 나요. 차가 천천히 달려도 속도감을 살릴 수 있죠. 차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카메라를 잡게 했고 동시에 카메라 7대를 썼어요. 큰 사고 없이 끝나 다행입니다.”
그는 2004년 액션스쿨 졸업 작품인 단편 ‘칼날 위에 서다’에 출연해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였다. 2008년 연출한 스턴트맨의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는 액션배우다’는 전주영화제에서 최고 인기상을 받았다. 왜 액션배우의 길을 접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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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턴트맨 출신 감독은 체력도 무쇠 같을 것이라는 편견은 사양한다”며 웃었다. “매일 밤샘 촬영하고 숙소 가면 기절했어요. 결국 몸살이 나 한밤에 몰래 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다행히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일어났지만…. ‘깡’으로 삽니다. 하하.”
‘우리는 액션배우다’로 연출력을 인정받아 장편영화에 데뷔한 그이지만 제작비 40억 원 가까운 상업영화는 도전이었다.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독립영화 감독이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지우는 게 어려웠어요. 다행히 다들 잘 따라줬어요.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요. 완봉승을 할 수 있는데 7회 마치고 내려온 투수 같은 느낌이랄까. 시간과 여건이 됐으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다음 영화에서 완봉승을 노리는 그는 “블랙코미디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